서원팔경
서원팔경
  • 박상일 <청주문화원·수석부원장>
  • 승인 2016.06.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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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박상일 <청주문화원·수석부원장>

조선시대에는 지역마다 경치가 빼어난 8경을 선정하여 시를 짓고 읊으며 자연을 즐기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 중국의 북송 때 송적이 그린 소상팔경도를 통해 널리 전파되어 고려 개성에도 송도팔경이 정해졌다. 우리나라 대표 팔경인 관동팔경은 정철의 관동별곡으로 더 유명해진 동해안의 경승지들이고, 단양팔경은 남한강과 지류에 있는 8경으로 전국적인 명승지이다.

청주에도 팔경이 있었다. 1932년에 간행된 `조선환여승람'에 서원팔경(西原八景)이 소개되어 있다. 상당귀운(上黨歸雲) 금천어화(川漁火) 선루제월(仙樓霽月) 봉림조하(鳳林朝霞) 석교석구(石橋石狗) 동장철학(銅檣鐵鶴) 우산목적(牛山牧笛) 낙가석조(迦夕照)이다.

제1경 상당귀운은 상당산성에 떠가는 구름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손색이 전혀 없는 상당산성은 부언할 필요가 없는 청주의 대표적 명승고적이며 제일 많이 찾는 등산코스이자 심신수련의 숲이다. 제2경 금천어화는 금천의 고기잡이 불이다. 금천은 곧 상당산성에서 흘러내려와 무심천으로 합류하는 쇠내로서 옛날 인근 주민들이 천렵을 즐기던 내였으며 한때는 사금을 채취하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인데 지금은 복개를 하여 냇물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언젠가는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되살려야 할 것이다.

제3경 선루제월은 망선루에 비개인 뒤 뜨는 달이다. 청주객사에 딸린 망선루는 고려말 공민왕이 청주에 머물 때 과거시험을 보고 합격자의 방을 붙였던 취경루(聚景樓)였는데 후에 한명회가 이름을 망선루로 고쳤다. 청주에서 유일하게 고려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지만 일제강점기에 뜯겨 한동안 제일교회에 있다가 다시 중앙공원으로 옮기는 수난을 겪었다. 제자리를 찾아 원형대로 복원될 날이 언제 올지 막막하다. 제4경 봉림조하는 봉림수의 아침노을이다. 봉림수는 운천동에서 신봉동에 이르는 무심천가에 있었던 인공조림으로 청주의 명소였으나 역시 일제강점기에 송두리째 뽑히고 농지로 개간되었다가 지금은 주택가로 변했다.

제5경 석교석구는 남석교에 장식된 개의 석상이다. 남석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고 제일 긴 돌다리인데 1930년대에 무심천 유로변경으로 육거리시장 땅속에 묻혀 신음하고 있다. 지하에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으므로 꺼내놓기만 하면 국가지정 문화재인데도 추진이 막연하니 답답할 뿐이다. 다행히 석구 2개는 완전한 모습으로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 제6경 동장철학은 용두사지 철당간의 쇠로 만든 학이다. 국보 41호 용두사지 철당간은 청주의 역사이며 자랑이다. 또한 배가 물에 떠있는 형상이어서 주성(舟城)이라 별칭 된 청주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제7경 우산목적은 와우산 목동의 피리소리이다. 와우산은 청주를 지켜온 진산이며 역사의 보물창고로서 산 전체가 유적과 유물로 덮여 있을 정도이다. 둘레 4㎣가 넘는 산성을 따라 등산을 하면서도 성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가 많아서 아쉽다. 제8경 낙가석조는 낙가산의 저녁햇빛이다. 청주의 동쪽을 병풍처럼 두른 낙가산은 보살사를 품은 늠름한 산으로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그윽한 종소리는 듣는 이의 시름을 잊게 한다.

서원팔경 중에서 상당산성 와우산 낙가산은 의구하나 복개된 금천은 의구하지 못하다. 무심천 범람과 북풍한설 막아주던 봉림수는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남석교는 땅속에 매몰되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구조하는 날까지 우선 숨구멍이라도 뚫어주면 좋겠다. 망선루는 많은 시련을 겪고도 위용이 남다르다. 천 년을 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 청주의 국보! 잘 있어줘서 고맙고 보는 마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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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당 2016-08-03 15:03:02
서원팔경이야말로 청주의 옛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함축어라고 할 수 있지요.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당산성, 망선루, 용두사지 철당간 등등은 잘 건사하여야 할 청주의 보물이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