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과 쓴말
단말과 쓴말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6.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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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단말은 병이 되고 쓴말은 약이 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단말을 멀리하고 쓴말을 가까이하라는 경구입니다.

그렇습니다. 단말은 감언(甘言)이고 쓴말은 고언(苦言)입니다.

단말은 입발림ㆍ말치레ㆍ립서비스와 같이 허울 좋은 겉치레 말입니다. 미언ㆍ아양ㆍ아첨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쓴말은 거북한 말ㆍ귀에 거슬리는 말ㆍ듣기 싫은 말이나 새겨두면 유익한 말을 이릅니다. 충언ㆍ간언ㆍ훈계ㆍ지적 등이 이에 해당하지요.

단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쓴말을 들으면 기분 나빠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여 마음에도 없는 단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아니 단말을 남발하고 삽니다.

그러나 단말을 좋아하다간 큰코다칩니다. 단맛이 치아를 썩게 하듯이, 단말은 사리판단을 흐리게 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감언이설(甘言利說)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인과 사기꾼들이 감언이설의 달인들인데, 이들의 감언이설에 현혹돼 돈 잃고 사람 잃어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들을 흔히 봅니다.

대부분 헛된 욕심과 그릇된 환상에 눈이 멀어 생긴 자업자득이지요.

그러므로 자신의 분수를 알고 욕심을 비우면 감언이설 따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쓴말은 약이지만 자칫 따귀를 맞거나 원수가 될 수도 있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말을 마다하지 않는 이는 의인입니다.

비평가나 평론가들이 쓴말에 이골이 난 사람들인데, 더러 악의적인 쓴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이들의 건강하고 건전한 비판은 내면의 성정과 성숙을 가져다줍니다.

‘양약(良藥)은 고구(苦口)나 이어병(利於病)하고, 충언(忠言)은 역이(逆耳)나 이어행(利於行)이라’는 잠언이 있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함에 이롭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단말을 쫓는 이는 실패하거나 불행해질 확률이 높고, 쓴말을 구하는 이는 성공하거나 행복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가슴 깊은 신념에서 말하는 ‘아니오’는 그저 다른 이를 기쁘게 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말하는 ‘예’보다 더 낫고 위대하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아니오’가 쓴말의, ‘예’가 단말의 전형입니다.

아닌 것을 천연덕스럽게 예라고 하는 사람과 목에 칼을 들이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하니 그대도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분연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대 곁에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말해주는 벗이나 선·후배가 적어도 한두 명은 있었으면 합니다.

단말 중에 으뜸은 칭찬입니다. 칭찬도 듣기 좋은 단말에 해당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긍정의 언어이니 단말과 괘를 달리합니다.

쓴말 중에 최악은 비난입니다. 비난도 듣기 싫은 쓴말에 속하지만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거나 터무니없이 사실과 전혀 맞지 않게 헐뜯는 것이니 쓴말과는 근본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칭찬에 인색하고 비난에 익숙합니다.

칭찬과 비난은 하면 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칭찬하면 칭찬이 돌고 돌아 좋은 시어머니로 거듭나게 하고, 며느리를 비난하면 비난이 돌고 돌아 시어머니를 옥죄는 사슬이 됩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라는 속담은 말의 파괴력을 웅변합니다.

그러나 때론 침묵이 금이 됩니다.

말 잘하면 나쁠 게 없지만 그렇다고 유창한 달변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눌변일지라도 진정성이 담겨 있는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랑도 낳고 기적도 낳습니다.

아무리 청산유수라도 상대의 마음을 열지 못하면 허언일 뿐입니다.

그대의 진정어린 쓴말은 내 영혼의 비타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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