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명 큰 기쁨
작은 생명 큰 기쁨
  • 안상숲<진천생거진천휴양림>
  • 승인 2016.05.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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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숲<진천생거진천휴양림>

진화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진화라는 말을 발전이라는 말과 동일시하는 거라네요. 게다가 진화의 마지막 단계가 가장 고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최고로 발전한 생명체라는 발상이 자연에 대한 개입이라는 오만함으로 나타납니다.

자연, 스스로 그러한 있는 그대로의 꼴을 못 보고 자꾸 그 질서를 재편성하려고 개입하지요.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간섭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얼마 전에 이것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습지에 올라갔는데 마침 왕잠자리 수채 한 마리가 물에서 나와 풀잎을 붙들고 막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저도 얼른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잠자리의 우화를 보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일 것입니다. 한 점 알로 던져진 물속에서 어찌 하늘을 꿈꾸었을까요? 그 꿈을 발현시켜 날개싹으로 돋아 올리는 잠자리 유충들의 생은 언제나 뜨거운 감동을 불러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왕잠자리 유충인 수채가 붙들고 있는 풀잎이 몹시 흔들립니다. 너무 높이 올라온 듯싶었지요. 단단한 풀줄기를 잡았어야 하는데 풀잎 끝을 붙들고 있으니 바람에 너무 심하게 휘청거립니다.

마침 옆에 마른 나뭇가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나뭇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부러뜨려 수채의 가슴과 다리 사이에 있는 빈 공간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넣었습니다. 수채가 다리를 뻗어 나뭇가지를 잡았고 나는 나뭇가지를 단단하게 땅에 고정시켰습니다.

그제야 바람이 불어도 더는 흔들리지 않아서 마음이 훨씬 놓였습니다. 잠자리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습니다. 잠시 뒤 등껍질이 갈라지며 초록의 등이 삐죽 나오고 커다란 두 개의 겹눈이 빠져나왔습니다. 쪼글쪼글한 아직은 시늉뿐인 날개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수채가 그만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얼른 그 아이 다리 사이에 나뭇가지를 집어넣어서 붙들 수 있게 유도했지만 이미 다리가 얼마간 빠져나온 뒤여서 그랬는지 껍질뿐인 다리로 무엇을 잡기에는 늦은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꽉 붙들고 힘을 줘야 배가 빠져나올 텐데 허공을 붙잡은 왕잠자리는 배를 빼느라 몸부림을 쳐야 했고 그 바람에 펴지기 시작한 날개가 엉키고 말았습니다.

분명 저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긴(왕잠자리는 2년 한살이이다) 수채시절 물속에서 꿈꾸고 계획하고 준비했던 왕잠자리의 삶을 한순간에 잃게 했습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수채시절 7번에서 14번의 허물 벗기로 충분히 연습이 된 탈피인데 그를 못 믿은 거예요.

그가 세 쌍의 다리로 꽉 움켜쥐었든 휘청거리든 풀잎만도 못한 내 도움 때문에 그가 목숨을 잃은 거라는 자각이 아팠습니다.

믿고 바라보기만 했다면,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그가 스스로 그러하게 놔두었다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조차 오만한 것임을 그제야 알게 되다니요.

작은 생명, 큰 세상을 보게 되면서 알게 된 그 많은 기쁨과 환희가 미안하고 염치없었습니다. 함부로 설치다가 그를 가해했다는 자책이 오래갔습니다.

무엇에든 조금의 가해함도 없는 그런 평화를 바랐지만 나의 관심이나 도움보다 때로는 무심함이 그런 평화를 가져온다는 깨달음은 인간인 나를 초라하게 했습니다.

밀리미터, 그 작은 생명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서려면 나도 그들처럼 작아져야 합니다. 그들처럼 작고 낮아져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아야만 작은 생명의 큰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속의 잘난 잣대를 버린 뒤라야 그들과의 만남이 가능한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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