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여 경청하면”
“귀 기울여 경청하면”
  • 이준각<제천署 덕산파출소 경위>
  • 승인 2016.05.31 2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 이준각

얼마 전 교대 근무를 위해 파출소 사무실에서 인수인계 준비를 하고 있는데 파출소 앞 시장에 위치한 잡화점 가게 주인이 파출소로 뛰어 들어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금 어떤 할아버지가 자신의 가게 물건을 훔쳐서 파출소 앞을 지나가려 하고 있으니 얼른 나가서 제지해 주기를 부탁 한다”는 내용이었다.

파출소 앞을 곧 지나갈 것이라는 신고에 자초지종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뛰어 나가봤더니 장애인 의자차량을 타신 할아버지 한 분이 저만치 앞에서 비키라는 손짓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벽시계가 멈춰서 배터리를 교환하려고 가게에서 배터리를 구입했으나, 배터리가 불량이어서 다시 물려달라는 사정이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배터리가 고장 난 것도 아니고 시계가 고장 난 것이지만 할아버지가 워낙 막무가내이시니 돈으로 돌려준다고 해도 다른 물건으로 가져가겠다며 가게 앞에 걸려 있는 우의를 벗겨서 가버리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는 것은 절도 행위이고 법에 의해 처벌받는다고 설명드렸지만 자기 물건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물건으로 대체해서 가져가겠다고 하는 할아버지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치는 느낌뿐이었다.

6.25전쟁 통에 양 다리를 잃어버리고 언어소통도 원만하지 않은 장애를 가진 막무가내식 할아버지를 위해 “대신 물건값이라도 치러줘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도 들었지만,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어보기로 하였다.

귀 기울여 경청하니 상황은 달라졌다.

할아버지의 말은 결국 시계가 고장 날 당시 원래 끼워져 있던 (고장난)배터리를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배터리를 돌려받고서야 편안해진 모습으로 돌아가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미 다 닳아버려서 쓸모없게 된 배터리를 돌려달라고 할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던 가게 주인과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관으로서는 황당하기만 한 현실이었다.

시민에 대한 경청이 신속한 문제해결로 이어지고 보니 요즘 제천경찰서(서장 김두련)에서 추진하고 있는 ‘겔포스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운동은 고충이 있거나 궁금·불편한 사항이 있어 경찰관서를 찾아오는 시민에게 ‘겔포스’ 역할을 해 편안하게 해주자는 취지로 운영된다.

공손한 인사(Greeting), 친절한 설명(Explannation), 진지한 경청(Listening)을 실천해 찾아오는 치안고객에게 마음의 감동을 주자는 취지에서 서장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싱겁게(?) 끝나버린 나의 경험은 앞으로 남은 경찰생활에서 녹아날 것이며, 모든 민원인들의 궁금하거나 불편·불만사항이 해결 될 때까지 진지한 경청을 실천하는 경찰관의 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