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끝자락에 서서
오월의 끝자락에 서서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6.05.3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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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

오월의 마지막 날이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던 오월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종착역 플랫폼에 들어서고 있다.

그랬다. 분명 봄이건만 여름 같은 오월이었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완행열차 타고 느리게 왔다가, 갈 때는 간다는 수인사도 없이 급행열차 타고 훌쩍 떠나버리는 신기루 같은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답게 넝쿨장미꽃을 소담하게 피워 올리고, 연초록을 진초록으로 물들여 사람들의 마음까지 싱그럽게 하는 오월.

그 오월이 유독 빨리 가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오월이 눈부시게 아름답기도 하지만 12달 중 기념일이 가장 많은 탓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같은 마음씀씀이가 많은 소중하고 의미 있는 날들이 많아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버리고 마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튼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확산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정의 달이 무색할 정도로 가정들이 깊은 시름을 앓고 있다.

어린이날에 어린 자식을 모질게 학대하는 부모들이 있고, 어버이날에 아버지를 살해한 남매가 있는가 하면, 부모봉양 문제로 칼부림하는 형제도 있다.

믿기지 않지만 이게 바로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가정의 자화상이다.

4인 가족의 핵가족시대는 옛말, 지천인 2인 가구에 1인 가구도 허다하니 가정이란 말을 쓰기조차 미편한 세상이다.

그것도 70% 이상이 아파트나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에서 외딴섬처럼 살고 있다.

하우스는 있는데 스위트홈이 없다. 굳게 닫힌 집들에는 TV 연속극 소리와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들릴 뿐 가족 간의 오순도순 도란도란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 간에도 그러하니 이웃 간에 소통이 있을 리 없다.

도시에 길은 있어도 아이들이 뛰어놀고 이웃들이 정겹게 소통하던 골몰이 없다. 아니 사라졌다.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경쟁하듯 다들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을 뿐이다.

2012년 여성가족부 조사 자료에 의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우리가족으로 인식한 비율이 23.4%에 불과했다. 자식들이 결혼해 분가해서 사는데다가, 사는 게 바빠서 부모 자식 간에 왕래가 잦지 않으니 손주들에게 조부모는 함께 사는 가족이 아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직계 존비속이 남남처럼 살아서 생긴 서글픈 현상이다. 지 자식 소중한 줄 알면서 저를 낳고 키워준 부모의 소중함을 모르거나 잊고 살아, 어린이날은 시끌벅적한데 어버이날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스마트폰을 손에 끼고 살면서도 정작 지 부모에게는 가뭄에 콩 나듯 전화하는 게 요즘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자식들의 모습이다.

가정에 먹구름이 몰아치고 있다.

가정폭력과 가족불화, 부모들의 잦은 이혼과 별거, 청소년들의 비행과 탈선, 노인 빈곤과 노인 학대, 고독사와 자살 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바로 그것이다.

100세 시대가 도래했는데 정작 부모세대들은 노후대비를 하지 못했고, 국가와 지자체들도 이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땜질처방에 급급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도려낼 것은 도려내고 보충할 것은 보충해야 한다.

피천득은 오월을 이렇게 노래했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그렇다. 오월은 이처럼 참 좋은 달이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위기의 가정 앞에 속울음을 삼키며 사는 오월이다. 오월의 즐거움이 사치라 할 만큼 가족해체와 가정 붕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오월의 끝자락에 서서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건강한 가족, 행복한 가정이 이 땅에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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