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계절의 향기
가정의 달, 계절의 향기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6.05.30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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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슬픔의 뒷등이 만져졌다. 릴리의 파리한 입술. 그 파리한 입술에 번지는 야릇한 미소. 그 애련한 미소로 내 심장 속에 들어와 마구 휘저어대는 그의 잔상. 저녁 내내 생각의 거품이 바글바글 머릿속에서 끓고 있다.

토요 꿈 다락 학교 2차 심층토론에 참석했었다. 생각보다 깐깐한 심의위원들의 예리한 질문에 조금은 긴장을 했나 보다. 그러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심의위원도 만만치 않게 반격을 해왔다. 미리 시뮬레이션을 그려보고 예상 질문에 예상 답변을 작성해 보았기에 이야기를 하는 동안 떨리는 목소리도 또랑또랑하게 정리가 되었다. 오목조목 반론을 제기했다.

심의위원은 비릿한 생선을 손끝으로 뒤적거리는 것 같은 눈빛을 내게 던졌다. 불쾌함이 물씬 풍긴 목소리로 “떨어뜨리고자 하는 게 아니고 이런 방향으로 가자고 의논을 하고 의견을 모으자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결코 기죽을 내가 아니다. 난 확고한 자의식을 갖고 자의적 판단으로 내 삶을 살아가는 나니까. 그들이 비릿한 생선 취급을 해도 좋다. 난 내 삶을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직은 이도 저도 아닌 설익은 향기 일지라도 나름대로 향기를 가지려고 꽃을 채집하고 있는 중이니까.

심의를 마치자 스트레스가 확 몰려왔다. 가까운 기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영화관으로 바람처럼 날아갔다. 긴장의 허리띠를 풀고 마룻바닥에 팍 엎질러진 뭉근한 풀처럼 늘어지고 싶었다. 모두 잊고 쉬기엔 영화관이 제격이라 생각했다. 무작정 제일 가까운 시간대의 영화를 찾았다. 내 시야에 딱 걸린 영화가 데니쉬걸이었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남자가 자신의 안에 감추어진 릴리라는 여자를 끄집어내면서 겪는 아픔과 혼란을 잔잔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그는 결국 성전환 수술을 결정하고 릴리로 살기로 한다. 수술이 잘못되어 죽음에 이르면서도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고 기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가슴을 사포로 문지르는 것 같았다.

자신의 가슴속에서 새어 나오는 여자의 음성을 애써 눌러 보지만 결국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그를 보며 애잔하고 아팠다. 또 그런 그를 보며 그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으로 살았던 남자를 찾기 원한다. 그러나 결국 사랑하는 그가 원하는 자아를 찾는 과정을 도와준다. 그런 아내의 감정이란 어떨까도 생각해 본다. 어쩌면 옆에 있는 그녀가 더 힘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아내는 끝까지 그를 살펴주고 그의 삶을 조용히 지켜봐 준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 너의 사랑을 이렇게 많이 받을까….”라는 릴리의 말이 귓전에 파문으로 퍼진다. 복의 차원을 떠나 그것은 가족의 힘이리라. 그가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이 사회적으로 잘못된 판단이건 아니건 간에 그를 지원해 주는, 조용히 끝까지 지켜봐 주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과연 나는 가족을 위해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지원해 주었는가? 나만 생각하고 내 의견에 반하는 것은 무엇이든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나의 어설픈 향기를 강요한 적은 없는가.

가정의 달 5월을 마무리하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그 구성원으로서 나를 조용히 생각해 본다. 슬픔의 뒷등이 자꾸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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