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김종필 전 총리 만나실거냐” 귀엣말
일각 “존재감 증폭 효과 위한 노림수” 분석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주포럼을 방문해 대권 도전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숱한 뒷이야기를 낳고 있다.
반 총장은 지난 25일 제주를 방문한 직후 가진 관훈클럽 초청 행사에서 “(올해 말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한국 시민으로 돌아오면 어떤 일을 할지 결심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국가통합을 위해 모든 것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미국 대선 후보는 76세인데 (대권후보로서 나의) 건강은 문제 되지 않는다. (내가 친박후보라고 해석되니) 기가 막히다”는 등 민감한 발언을 쏟아냈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18일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7개월 정도 남았는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많이 도와달라”고 즉답을 피했던 반 총장이었다.
반 총장의 제주 발언은 그래서 준비된 발언으로 해석하는 게 중론이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도 “예상은 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깜짝 놀랐다”며 “출마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 총장 입장에선 이번 제주 방문을 통해 어쨌든 질문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차기 대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울러 자신의 모호한 행보가 가져다주는 국민의 불편함을 조금 걷어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초청 대상이 아니었던 정진석 원내대표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것도 눈길을 끌었다. 어수선한 당내 상황을 정리해야 할 정 원내대표가 급작스럽게 제주를 방문해 반기문 총장을 만난 것 자체가 ‘반기문 마케팅’의 일환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반 총장이 이날 적극적인 발언을 하면서 의외의 ‘선물’을 던져준 것이다. 25일 만찬 행사는 원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호스트다. 애초 정진석 원내대표는 참석 맴버가 아니었으나 이날 만찬에 헤드테이블에 자리했다.
반 총장은 이날 관훈 포럼 행사가 길어지면서 만찬장에 1시간가량 늦게 도착했지만 만찬 분위기는 그때부터 무르익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만찬 자리에서 반 총장과 동향인 ‘충청’이라는 점을 과시하듯 반 총장과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행사 도중 정 원내대표는 반 총장에게 귀엣말을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민감한 시기에 무슨 말을 건넸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당시 정 원내대표는 반 총장에게 “이번 한국 방문 기간에 JP(김종필) 전 총리를 만나실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반 총장이 이미 충청권의 큰 인물이 된 만큼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충청 맹주인 JP를 한번 만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그러나 이에 대해 가타부타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의 이번 제주 방문은 2017년 대선 가도에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키워놓고 ‘자가 증폭’되도록 놔두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반기문 대망론’이라는 에드벌룬을 본인 스스로 띄워놓고 7개월 후 유엔 사무총장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 정치상황을 살피면서 다음 수순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대선 1년을 남긴 올해 연말이 되면 어찌 됐던 차기 대권을 놓고 정치권의 재편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반 총장 자신이 그 정치권 재편의 핵심축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현재의 여야 구도가 아닌 차기 대권용 진지 구축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행보를 결정하는 일종의 ‘꽃놀이 패’인 셈이다. 반 총장이 ‘친박 후보라는 언급’에 “기가 막히다”라며 손사래를 친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반 총장의 ‘제주 발언’으로 인해 2017년 대선 레이스가 일찌감치 달궈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