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정신
바보 노무현 정신
  • 임성재 <시민기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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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지난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른 아침부터 추도식에 참여하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시키고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지만 차분하게 이어진 도보 행렬은 때 이른 더위도 그늘 한 점 없는 불볕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7년이 지났건만 갈수록 추모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는 듯하다. 특히 올해는 여소야대 국면을 만든 4·13 총선의 영향 탓인지 여야 각 정당의 대표를 비롯해 20대 국회 당선자들이 대거 참석했고, 청와대에서도 정무수석이 참석하는 등 정치권에서 더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30도가 넘는 때 이른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추도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추도식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3천여 명이 넘는 추모객으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에서는 애국가 제창에 이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다함께 불렀다. 광주 5·18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허용하지 않은 정부의 편협한 결정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었는지 부르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감동은 컸다.

이날 추도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알려진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맡았다. 그는 추도사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4·13 총선에서 민란(民亂)의 심정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투표혁명을 이뤄낸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해 통합의 정치를 해달라는 호소였다. 친노와 비노의 계파논쟁을 뛰어넘고, 호남 대 비호남의 지역 구도를 타파하고, 여와 야의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남과 북의 협력시대를 열어가는 통합의 정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정신이라는 것이었다.

추도식의 마지막 순서는 유족대표의 인사였다. 지난해 추도식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려 세간을 놀라게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연단에 올라 추모식에 참석한 시민들과 행사를 준비한 노무현재단 관계자들에게 짧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어떤 정치적 발언도 삼가한 그의 침묵 속엔 한자리에 모인 여야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낮은 지지율에 허덕였고, 퇴임당시에는 역대 대통령 중 최저의 지지율로 쓸쓸히 청와대를 떠났다. 퇴임 후인 2008년 서울신문이 실시한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박정희가 73.4%로 단연 1위였고, 이어 이승만 8.4%, 김대중 7.0%, 노무현은 5.1%에 불과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운명한지 한 달 후인 2009년 6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박정희가 38.1%로 여전히 1위를 달렸지만, 노무현은 36.0%로 급등했고, 2012년 조사에서는 노무현이 35.3%로 31.4%에 그친 박정희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서거한지 7년이 지났건만 이렇게 신뢰도가 올라가고 추모열기가 고조되는 것은 무슨 현상일까? 4만 3천여 명의 회원들이 노무현재단에 매월 회비를 내고, 이런 회원들이 나날이 증가하는 현상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그가 불행한 최후를 맞았기 때문도 아니요, 그가 재임 기간 중에 이뤄낸 업적 때문도 아닐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를 열망하고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남기고 간 바보정신 때문이다.

그를 추억하는 시민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권좌가 누구에게는 새털처럼 가벼운 자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진정으로 국민의 편에 서는 대통령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대통령이 퇴임 후에 시골의 촌부처럼 살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을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알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다시는 그런 대통령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그를 추모하게 만드는 것이다.

봉하마을을 등지고 돌아오는 발걸음 내내 동영상에서 흘러나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뜨거운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어쩌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미리 녹음이라도 해둔 것 같은 말.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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