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미학
착각의 미학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5.2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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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인간은 착각의 동물입니다.

조물주가 준 착각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사는 까닭입니다.

그 착각의 자유가 인간의 행ㆍ불을 부릅니다. 사랑받고 있다고, 잘생겼다고, 남이 나를 알아준다고, 남이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살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못생겼다고,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고, 남이 나를 미워한다고 착각하고 살면 불행해집니다.

하여 착각에 웃고 착각에 우는 인생사입니다.

착각(錯覺)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함입니다. 유의어로 착시, 혼동, 착오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착각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을 의미합니다.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닌 거죠.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오류들이 이런 착각이 단초가 되어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착각은 삶의 필요악입니다. 아니 착각이 있어 무미건조한 삶에 꽃이 핍니다.

당신의 사랑을 보세요.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착하다고,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고, 하늘의 별도 따줄 것 같은 사람이라고, 그가 최고의 선이요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 여긴 착각들이 사랑을 싹트게 했잖아요.

그래요. 단점도 장점으로 보이는 착각이 사랑을 잉태했지요.

착각이 맺어준 인연을 곱게 가꾸어 가면 행복한 관계가 되고, 후회하거나 원망하고 살면 불행한 관계가 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착각의 시린 추억들을 안고 삽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모든 걸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엄마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떼를 쓰고 억지를 부려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철이 들자 아버지보다 힘센 사람이 세상에 즐비했고, 어머니도 상처받는 인간이었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였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제일 예뻐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부잣집 아들을 더 예뻐하는 걸 알게 되면서 슬픔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제일 잘난 줄, 내가 제일 똑똑한 줄, 내가 제일 사랑스러운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나보다 더 잘나고, 더 똑똑하고, 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았습니다.

모두 착각이었습니다. 배신의 아픔도 알고 보니 모두 착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그만은 나를 믿어줄 거라는, 그만은 나와 끝까지 갈 거라는 믿음이 착각이었습니다.

배우자니까, 자식이니까, 제자이니까, 이런 뭐 뭐하니까 가 착각을 부릅니다.

이순을 한참 넘긴 나이에도 착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도 며느리가 딸이라는 착각을,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고요. 개천에서도 용이 날 거라는 착각도, 언젠가는 대박을 터트리는 날이 올 거라는 착각도 여전하답니다.

아마도 이런 제 착각은 죽어야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고갯마루에 걸린 무지개를 잡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던 유년시절의 착각과, 파랑새를 잡기 위해 신열을 앓았던 사춘기의 착각은 내 영혼의 비타민이었습니다.

이해타산이 없는 순수 그 자체였으므로 기억 저편의 착각들을 잊지 못합니다. 더러는 착각인 줄 뻔히 알면서도 착각에 빠집니다.

착각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수반하지만 삶의 내공을 키우고 인생을 농익게 하는 원천입니다.

착각은 희망을 부르는 마중물입니다. 용기와 오기를 분출하는 착각은 살아있음의 반증이며, 설사 아니라 할지라도,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단죄할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대의 착각에도 넝쿨장미처럼 예쁜 꽃이 소담하게 피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그대가 행복하기를 빌고 또 빕니다.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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