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속에 우리 역사가 기록돼 있다
식물 속에 우리 역사가 기록돼 있다
  • 우래제 교사<청주 원봉중>
  • 승인 2016.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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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우래제 교사<청주 원봉중>
▲ 피뿌리풀

국내라고는 하지만 제주도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큰 맘 먹고 제주의 야생화를 만나러 떠났다. 야생화 탐방을 위해 며칠 동안 늦도록 급한 시골 일을 정리하느라 몸살감기가 겹쳐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들꽃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제주의 야생화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제주만의 특이한 식물이 많다. 이름에 한라수국, 한라구절초, 한라장구채, 탐라현호색처럼 ‘한라’나 ‘탐라’가 붙은 식물은 거의 제주특산식물이다. 제주산버들, 제주산벚나무처럼 ‘제주’가 붙은 식물도 마찬가지다. 보통 울릉도 특산식물은 ‘섬’자가 붙는다. 이는 일본인 식물학자들이 울릉도산에는 다케시마를, 제주산에는 탐나(탐라) 또는 사이슈(제주의 일본 발음)라는 지명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섬오갈피, 섬잠자리피, 섬쑥, 섬매자나무, 섬개서어나무 등은 제주도산이다.

탐사 첫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틀려 천만다행이었다. 덕분에 보고 싶었던 세바람꽃을 만났고 한라산과 백두산 정상 근처에만 산다는 시로미를 만나 보았다. 시기가 약간 늦어 싱싱한 꽃을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대신 열매를 볼 수 있으니 다 가질 수 없는 복이려니 서둘러 하산하여 긴 동백림을 탐사하는 동안 호랑이처럼 무서운 가시를 달고 있는 호자나무를 만나고 들어와 발만 씻고 깊은 잠에 떨어졌다.

아침 일찍 피뿌리풀을 찾아 떠났다. 뿌리의 색이 핏빛 같아 피뿌리풀이라고 하는데 가을의 단풍드는 잎도 붉은빛의 고운 색을 자랑한다. 피뿌리풀은 세계적으로 몽골, 네팔 등 추운 지방에 자생하는 식물로 우리나라에는 황해도 이북에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제주도 일부에서만 자생하게 되었을까? 아직 학술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고 제주총관부가 설치되었을 때 제주의 오름은 몽고군의 군마를 기르는 방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이때 몽골 군마의 먹이로 가져온 건초에서 씨가 떨어져 번식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하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한 피뿌리풀이 우리 땅에 살게 된 뒷면에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있다니 가슴이 아리다.

피뿌리풀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자태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아름다움 때문에 거의 멸종될 위기에 처해지고 말았다. 여러 곳의 오름에서 흐드러지게 피던 꽃들이었는데 사람들의 욕심이 그냥 두질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구잡이로 캐어간 피뿌리풀 중에 살아남은 게 없다는 것이다.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피뿌리풀은 조금이라도 뿌리를 건드리면 말라 죽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 자라는 피뿌리풀을 옮겨 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반면에 씨로 발아시키면 생존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피뿌리풀의 성질을 알았으니 그냥 보기만 하고 좀 더 번성하도록 기다려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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