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그이름, 아버지
푸르른 그이름, 아버지
  • 유현주<청주오송도서관>
  • 승인 2016.05.24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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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유현주<청주오송도서관>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말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한 육아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출연자 아빠에게 설문지 두 장을 건넸다. 하나는 그의 아이들에 대한 설문지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설문지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설문지에는 거침없이 답을 적어내려 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할 때에는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이고, 평소 아버지가 자주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지, 아버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은 누구인지,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지금 자신의 휴대 전화에 아버지 사진은 몇 장이나 있는지,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다. 결국 어느 것 하나도 정확하게 답하지 못한 그때, TV에서 출연자 아버지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것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출연자가 대답을 적을 수 없었던 똑같은 질문에 아버지가 거침없이 답을 해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출연자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렇게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나 싶어 깜짝 놀랐다. 가슴이 먹먹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리고 곧바로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해서는 난생처음으로 “사랑합니다”라며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표현하는 영상을 보면서 나 또한 우리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한 가족의 중심이 되는 아버지는 가계(家系) 계승에 있어 임무가 막중하다 보니, 어머니에 비해 자식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 마치 전쟁터에서 갑옷과 투구를 내던지는 것과 같은 부끄러운 일쯤으로 생각하다 보니 어지간해선 입을 닫고 웬만한 것은 가슴에 묻어둔다. 그러다 보니 자식은 아버지를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김현승씨가 쓴 ‘아버지의 마음’에서는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라고 표현했다. 박범신의 소설 ‘소금’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버지들에게 자신만의 욕망은 없다. 가족을 먹이기 위해 모든 욕망을 숨기고 오로지 돈을 번다. 푸릇하던 시절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즐겼는지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조용히 신발을 벗고 적막한 거실을 지날 때면 ‘대체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소용인갗 싶다가도 잠든 가족의 얼굴을 보며 퍼뜩 정신을 차린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숙명적인 외로움이 짙게 느껴지는 구절이다. 사실, 우리네 아버지들이 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고, 고약한 악당도 단번에 물리칠 수 있는 슈퍼맨과 같은 존재가 아닌 것을! 우리의 아버지도 살면서 작은 실수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때문에 겁도 먹고, 나만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에 가위도 눌리며, 뼈아픈 실패에 남몰래 울기도 하고, 간혹 나만을 위한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이내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신을 추스르는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인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갈 길이 멀어 외로워도 기꺼이 가족들을 위해 일관성 있게 중심을 잡아주며, 앞장서 가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숙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우리들 아버지가 진짜 용기 있는 어른이자, 이 시대 진정한 영웅, 아버지로서의 참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힘내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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