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될 꽃방
전설이 될 꽃방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6.05.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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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기다리던 꽃 사진이다.

메마른 가슴에 생기가 돌고 감성지수가 오른다. 꽃은 성별과 신분 구분없이, 매일 같은 시간에 조건 없이 핸드폰에 전송된다.

받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 반응도 다르다. 꽃을 보고 감동하며 바로 응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꽃나부랭이’ 같은 거 보내지 말라고 항의를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단다. 반응이 없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인가. 그들의 반응이 어쨌든 어른 왕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선사하고 있다.

오늘 배달된 꽃은 꽃 중에 화왕인 모란이다. 모란 향이 코끝에 닿아 황홀 지경이다. 화려하기 그지없고 빛깔 또한 누가 봐도 반할 정도다. 꽃방에는 꽃과 함께 꽃말과 생태, 품종과 재배 등이 오르고, 꽃에 관련 신화나 전설, 노래도 오른다. 모란의 이력을 보는 듯하다.

어디 그뿐이랴. 모란꽃은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다. 사물을 의인화하여 쓴 소설(가전체)의 효시인 설총의〈화왕계〉이다. 인류의 문화사에 꽃이 어떤 영감을 주었고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알게 된다.

꽃방에 배달된 꽃들은 거저 생긴 것이 아닌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열정의 산물이다. 계절에 맞춰 파종하여 양분을 주고 손수 가꿔 얻은 결실이다. 꽃대가 오르고 꽃봉오리 꽃잎이 한 장 두 장 피어오르는 찰나를 포착하느라 수백 장의 카메라 셔터를 눌렀으리라.

그중에 괜찮은 사진을 고르는 일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꽃에 관한 지극한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결코 감내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렇듯 수백일 온 힘을 기울여 가꾼 꽃이 전달되는 것을 꽃방 사람들은 알랴. 꽃방은 감성 충전의 마당이다. 생소한 꽃 이름을 접하며 서로 느낌과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다.

나는 어른 왕자를 안다는 것만으로 선택받은 사람이다. 꽃방에 들지 않았을 때 나를 돌아본다. 대부분 생업에 종종대느라 쉴 틈이 없었고, 주말이 아니면 꽃과 나무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꽃방은 다양한 꽃을 누리며 삶의 여유를 갖는 나만의 숨 고르기 공간이 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불평과 불만, 왜곡된 시선은 꽃의 서정으로 순화되는 순간이다.

한 사람의 아낌없는 몸짓의 혜사(惠賜)로 세상은 맑고 향기롭다. 꽃방의 꽃들은 지인의 감성을 타고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다.

무수한 꽃을 수백 수만 명에 나누며 어떤 욕심도 이해타산도 하나 없다. 꽃방처럼 무욕의 숭고한 장이 어디에 또 존재하랴. 꽃방 사람들은 어른 왕자님 덕분에 늘 가슴에 향기로운 꽃을 안고 살아간다. 이만하면 전설이 될 꽃방이 아닌가.

꽃은 아무에게나 선물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어떤 행사나 의미를 담고자 일부러 준비한다. 그리 보면 우리는 아무나가 아니다. 꽃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와 일면식이 있다.

꽃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 꽃방의 꽃들이 어디서 어떻게 어떤 시간을 거쳐 나에게 왔는지 떠올려야만 한다.

잠시라도 숨은 노력과 베풂을 느낀다면, 적어도 삶의 불평불만은 사라지리라. 꽃방에서 망중한을 즐기며 더불어 꽃방지기가 되길 원한다. 지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정의 꽃을 피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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