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정체성
  • 이지수<청주 중앙초>
  • 승인 2016.05.2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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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나는 누구인가?’

오늘도 나는 찾지 못할 질문을 던진다. 주변의 상황에 의해 이름 지워지는 상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때의 진짜, 나. 그러나 짧은 이 한 문장의 질문에도 정작 정답을 모른다는 아이러니와 직면한다. 덜컥 우울해져 버린 오늘, 반복되는 고민에 빠진다. 언제쯤이면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을 것인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민음사)’은 이런 컨디션 최악의 상태에서 제목 그대로를 보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사람이든 어떤 대상이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계기가 있는데, 이 책은 수식어구 없이 쓱 쓰인 무뚝뚝한 제목이 마치 내 고민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읽게 되었다.

책 속의 여주인공 샹탈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샹탈은 장마르크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뭇 남성들의 시선에 둔다. 나에게는 샹탈의 이런 면에 좀 의아한 점이 없지 않았으니, 그것이 비록 본능에만 치중하는 듯이 보이는 샹탈이더라도 말이다.

샹탈에 비해 장마르크는 자신을 완성하는 대상, 그러니까 자기의 정체성의 정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샹탈. 그래서 샹탈이 다른 남자들이 자신을 더는 돌아보지 않아 실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곤 익명의 남자로 분해 샹탈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장마르크의 연기로 인해 샹탈도 여전히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만족감에 자아를 되찾아가지만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펼쳐졌다. 샹탈은 사실을 알고선 그 사랑에 감동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장마르크에게 경악한다. 장마르크는 그런 샹탈을 설득하지 못하고 놓쳐버린다.

밀란 쿤데라의 또 다른 유명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의 낡은 철제캐비닛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선배들의 오랜 체취와 담배연기가 찌들고 낡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을 때의 느낌, 커피를 한 대여섯 잔 마시고 나서 앉아있음에도 왠지 몸이 붕 뜬듯한 기분, 뭐랄까, 개인적인 생각이란 걸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소설과 내가 하나 되는 듯한 기분, 이 책도 그와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정체성’도 샹탈과 장마르크가 되어 각기 다른 심정으로 읽어보면 왜 저래, 라는 비판보다는 그냥 약한 또 한 명의 사람이라는 공감대가 생기는 것 같다.

샹탈을 보며 내가 찾은 정체성의 정체는, 그냥 나는 나라는 것이다. 나란 고유명사, 내 인생의 주인공,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가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요즘 좋아하는 밴드는 쿡카스텐이라는 것? 7월의 공연을 예매해놓고 그날을 고대하고 있는 아이와 같은 면도 있는 나라는 것?

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힘든 일인 것 같다. 샹탈을 이해하려 세 번이나 책을 읽었던 것처럼 조금씩 이해하려 곁을 내주다 보면 조금 더 풍족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곁이 사람에게든, 사물에든, 자연에든 내가 마주하는 모든 것이라면 다 좋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에 대한 대답은 알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난 또 내게 조용히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을 같은 질문을 또다시 던져본다.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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