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
늦기 전에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6.05.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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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아름다운 오월이다.

남새밭에는 상추·쑥갓·열무 등이 싱그럽고, 복숭아나무는 꽃잎만큼이나 고운 초록 잎사귀를 가지마다 피워 올린다. 잎사귀와 숨바꼭질하며 쑥쑥 자라는 아기 복숭아는 예순 촌부의 무딘 감성도 깨울 만치 어여쁘다. 오월의 푸르름 앞에 서면 때로 뾰족하던 내 마음도 슬그머니 넉넉해지고 만다. 어느 한날한시도 같지 않은 모습에 무표정하지 않은 오월. 오월은 자연을 품고 자연은 사람을 품었다.

그러나 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오월에 안겨서도 우리 사회는 지금 슬픔에 휩싸이고 말았다.

서울 강남역에서 일어난 <묻지 마> 살인 사건 때문이다. 현재까지 범인은 여자에게 무시당한 것에 대한 앙심으로 일을 저질렀다는 한마디만 남겼다. 이 안타까운 일로 우리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특히 여성들이,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의 충격이 크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이 되었다.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행진에는 남성들도 있지만 주로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여성들은 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내용과 <여자가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썼다. 여성이 안전하게 살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추모현장이 돌연 난상토론의 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신병자가 죽였는데 정신병자 책임이죠.”

“총기 사고 많으니까 군대 없애야겠네. 믿음직한 여자들한테 다 맡겨야지.”

일간베스트 커뮤니티 회원과 일부 남성들이 시민을 향해 이렇게 외쳤기 때문이다.

저들이 제기한 주장은 이 사건을 남성 대 여성의 대결로 몰아 혐오라는 단어를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추모 물결에 동참한 사람들은 남녀 대결을 원치 않는다. 우리 사회가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뿐이다.

남성과 똑같이 귀하게 태어났으나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여성들, 더 나아가 이보다 더 약한 사람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당연한 바람이 자연스럽게 일으킨 추모 물결인 것이다. 날마다 복숭아밭에서 일하는 세상 물정 어두운 촌부도 알겠는데 저들은 왜 순수한 추모 물결을 남녀대결이라고 왜곡하는 걸까.

요즈음은 뉴스를 보기 겁날 정도로 무서운 사건이 많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날 때 우리는 모두 사월의 새싹처럼 조그마했고, 자랄 때 우리는 모두 오월의 신록처럼 푸르렀다. 모두가 다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자녀이고 희망이었거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어떤 분노가 얼마나 쌓였기에 인명을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 걸까. 이제 무엇으로 이 지경까지 망가진 심성을 다시 푸르르게 회복할 수 있을까.

요 며칠 나는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평생 농사만 지어온 촌부에게 묘책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의 신록을 보며 막연히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답은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인성회복이라는 희망, 더 늦기 전에 희망이라는 씨앗에 물을 주고 가꾸자. 그래야만 내 가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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