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날아갔다
지붕이 날아갔다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6.05.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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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용례

밭에 가서 여유를 부리는 것은 농막의 마루와 산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이다. 그런데 4월에 불었던 작은 태풍에 농막의 지붕이 날아갔다. 햇볕을 가려 주던 그늘이 없어진 것이다.

한 달여를 지붕 없이 지냈다. 세평 지붕이 날아가 버리니 비가와도 들어갈 곳이 없고 뜨거운 햇볕을 피할 그늘이 없다. 밭에 가는 일마저 뜸해졌다.

지붕이 날아갔다는 것은 집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다.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느닷없이 닥쳐온 불행이 이와 같으리라. 허술했지만 농막의 존재가 컸던 것이다. 비 오는 날은 비를 핑계 삼아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앞산에서 벌이는 초록의 향연을 즐기던 낭만의 시간이 있었다.

농막은 파란색 플라스틱 슬레이트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지붕이 늘 마땅찮았다. 그 초라함에 불만을 하면서도 그 아래서 밥을 먹고 낮잠을 즐겼다. 그러면서도 고맙단 생각은커녕 가난 해 보이는 이 지붕을 언제 뜯어내고 새 지붕으로 교체할까 궁리를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지붕이 날아가 버리니 아쉬움이 크다.

지인에게 농막이 날아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노부부가 있었단다. 둘이 헤어지기만 하면 행복 할 것 같았단다. 싸우다 싸우다 헤어졌단다. 그런데 석 달도 못 돼서 후회했다는 이야기다. 곁에 없어 봐야 비로소 서로 소중함을 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비바람에 시달리고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던 그 그늘이 이렇게 절실했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지붕을 잃고 비로소 그 귀함을 깨닫는다.

드디어 지난주에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농막의 지붕을 다시 올렸다. 잠시 내 곁을 떠났던 친구가 제자리로 돌아온 듯 반갑고 기쁘다. 이참에 다 뜯어내고 새로 지을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새로 지으려니 판을 크게 벌려야 할 것 같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럽고 번잡스러운 것도 싫어 그냥 보수해서 쓰기로 했다. 하늘 한 조각 가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그럭실엔 봄볕이라고 하긴 엔 너무나 강력한 햇살이 내리쬔다. 업은 아니지만 농막은 내 일터이자 휴식처다. 밭에서 허리 꼬부려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다가 힘이 들면 마루에 벌렁 누워 쉬는 맛을 어디에 비할까. 비록 양철로 지붕을 올렸지만 이제야 살 것 같다. 푸근하고 편안하다.

지붕이 없었던 농막에 서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지붕이 날아간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보았겠는가. 부모는 자식들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지붕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선생님,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지붕 아래서 세상의 비바람을 피하고 살았다는 것을 아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새로 단장은 했지만 여전히 작고 초라한 농막이다. 나는 올여름 장마철 양철지붕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여름 더위를 조롱해볼 참이다. 곧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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