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論
꼰대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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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생각이 꽉 막혀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을 꼰대라 한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60년대 소설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신조어는 아니다.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젊은 세대가 아버지나 선생님 등의 기성세대를 비꼬는 은어였다.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이 선명해지고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의미가 확장되었다. 기성세대를 겨냥했으므로 꼰대는 나이와 관련이 깊다.

최근 SNS에서 꼰대 자가 진단이 눈길을 끌었다. 진단서를 만든 사람은 꼰대를 알코올중독과 같은 질병으로 보았다. 꼰대와 꼰대질이 나날이 사회문제로 불거지기 때문이다. 꼰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행태를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보여주고 각자 몇 개나 해당하는지를 따져 꼰대화 정도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꼰대에 대한 정의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꼰대 지수를 계량화할 수도 없으므로 진단 결과의 의미는 크지 않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 진단에 응했다. 장난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에 노골적으로 번진 꼰대 문제를 공감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꼰대가 반드시 노인인 것도 아니고 노인이 모두 꼰대인 것도 아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꼰대를 본다. 비양심적이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뻔뻔하면서 권위적이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꼰대다. 젊음은 생물학적 나이에 불과하다. 전이와 변이의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젊은 꼰대가 더 해롭다. 학번의 권위를 앞세워 신입생들에게 오물 막걸리를 먹이는 대학생이나 교통 법규를 위반하고도 오리발 내밀며 단속 경찰관에게 시비를 건다면 아무리 젊어도 꼰대다.

꼰대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성실하게만 살았으니 자기 경험과 가치관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다. 이들은 이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고 여의치 않으면 화를 내고 싸우기도 한다. 사회 공동의 정의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관철하기 위한 다툼이기에 다분히 이기적이다. 생각이 다르면 처음 본 사람도 바로 원수가 된다. 사회 질서가 최고의 미덕이라고 말하면서도 공중도덕은 쉽게 무시한다. 남에게만 엄하고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기 때문이다. 젊음이 노력의 결과가 아니듯 나이 많은 게 권세가 아니지만 그들은 이를 모른다.

나이를 불문하고 꼰대들의 공통점은 인간에 대한 존엄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경험과 가치관이 아무리 옳고 절대적이라 해도 사람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혼자만의 정의를 위해 타인의 인격과 상처를 함부로 저격해서는 안 된다. 자식을 앞세운 세월호 유족들의 진상 조사 요구를 시체 장사라 비아냥거리고 아베총리께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셨으니 일본을 용서하자고 떠드는 이들이 대표적인 꼰대들이다. 젊어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원로 시인도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면서 최근 꼰대 대열에 합류했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나이 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들의 꼰대질에서 절감한다. 아집에 빠진 노인은 사회의 독(毒)이다. 그리스에는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빌리라는 속담이 있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의 중요성을 뜻하는 말이지만 지혜가 반드시 경험에서 비롯되는 건 아니다. 성찰과 반성이 없는 경험은 칼집을 나온 예리한 검처럼 존재만으로도 위험하다. 주위의 아픔을 돌아보며 부단히 성찰하는 사람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 나이 들어도 꼰대가 되지 않는 것, 젊은이들에게 해롭지 않은 사람으로 늙어가는 것이 나의 노후 대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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