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웃게 하자
선생님을 웃게 하자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5.18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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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스승의 날이 그렇게 갔습니다.

일요일인 탓도 있지만 그럴듯한 축하행사 하나 없이, 이렇다 할 특집기사도 볼만한 특집방송도 없이,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보내고 말았습니다. 스승의 날의 현주소가 이렇습니다. 가슴이 짠합니다.

참스승이 없어 그랬겠지, 선생은 지천으로 깔렸는데 정작 스승을 찾아볼 수 없으니 자업자득이라 구요.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한두 분의 스승은 있습니다.

그 스승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이 사회가 존재합니다.

많이 배웠던 적게 배웠던, 좋은 대학을 나왔던 못 나왔던 스승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스승의 날은 범국가적으로 경축함이 마땅하고,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보은함이 도리입니다.

자고로 선생님들이 스승이라는 자존감과 자부심을 느낄 때 교육의 문이 열리고 교육에 꽃이 핍니다.

그러나 각박한 이 사회가 교직에 회의와 환멸을 느끼게 하니 참교육과 참스승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폭언은 다반사고 심지어 폭행과 성희롱까지 당하며, 학부모들에게 툭하면 멱살을 잡히고 무릎 꿇리는 세태입니다.

목하 선생님들 수난시대입니다.

충북의 교권침해사례(2006년 179건→ 2015년 488건)만 봐도 교권상실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정년보장은 물론 은퇴 후 연금수령도 보장받고, 1년에 두 번 방학도 주건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면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재직경력 20년만 버티자는 교사들이 지천이겠습니까?

예로부터 천직(天職)이라 했던 교직이 이처럼 천직(賤職)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믿기지 않지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된 적폐입니다.

물론 문제 교사들이 없진 않습니다. 전국에 수만 명의 교사가 있고 보니 함량미달자도 있고 일탈자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교사들이 요즘 언론에 회자하고 있는 것처럼 동료교사를 성추행하고, 제자를 성폭행하고, 학생들을 감정적으로 손찌검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거죠.

그렇게 미꾸라지 한두 마리가 교단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키지만, 대다수 교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후학 지도에 묵묵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스스로 천직(賤職)이라 여기는 선생님들에게 양질의 교육과 사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명예퇴직을 시켜달라고 줄을 서는 교단현실은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선생님들의 비극은 곧 우리 아이들의 비극이고, 우리 사회와 미래의 어둠이니, 서둘러 적폐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시름을 앓는 선생님들에게 원기를 불어넣어 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선생님들을 웃게 하는 다섯 가지 팁이 있습니다.

첫째, 선생님들의 짐(잡무와 줄 서기)을 가볍게 할 것,

둘째, 선생님을 폭행하거나 괴롭히는 자를 엄중 처벌하고 보상할 것.

셋째, 선생님들을 일등지상주의의 전사로 내몰지 말 것.

넷째, 선생님을 존중하고 우대하는 사회 기풍을 진작할 것.

다섯째, 교단 내부의 자정노력이 흐르게 할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교육부와 지역교육청이 대안을 만들고, 사정당국과 언론과 지역사회단체가 적극 협조하고, 가정과 학부모들이 동참하면 선생님들의 처진 입가가 서서히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물론 교육주체들의 혁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교권확립과 선생님들의 웃음 복원입니다.

‘교단 후배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는 은퇴한 교장 친구의 넋두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정말 이래선 안 됩니다. 교직이, 선생님이 보람이고 축복이 되어야 나라의 미래가 있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란 말이 방방곡곡에 메아리치길 소망하며.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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