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물음의 권리
캐물음의 권리
  • 배경은<사회복지사>
  • 승인 2016.05.1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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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사회복지사>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보통들 갖고 있다. 워낙, 사회가 빨리 변화하고 있으며 그것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천명처럼 느껴질 만큼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한몫을 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호기심은 어떤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무엇을 주어야 행복할지 생각해 보았는가. 사회와 타인의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했고 정작 자신을 돌보고 배려하는 마음은 얼마나 작동되고 있는지 한 번쯤 자신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자신의 영혼의 탁월함과 위대함에 대한 관심, 둘째는 자신의 외모와 건강 등 신체적인 탁월함에 대한 관심이며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부요함에 대한 관심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영혼의 탁월함’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관심을 두고 자신을 돌보며 배려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집중이 진정한 자기에의 배려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 철학하며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캐물음의 삶이며, 캐물음을 통해서만이 비본질적인 삶에서 본질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캐물음(exetasis)이 없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소크라테스의 캐물음(exetasis)은 ‘내가 여기서 일하는 것이, 이 사람과 이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정말 나의 영혼의 탁월함이 드러나는 것이며, 내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삶인지에 대해서 캐물어 가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캐물음은 한두 번의 생각이 아닌, 나의 인지적, 내면적 능력으로 더는 파고들어 갈 수 없을 때까지 캐묻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아테네 사람들에게 증오감을 불러 일으켰던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캐물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기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회피하지 않고 선택하며 살아갈 수 없다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최후 진술을 하고 독주를 마신다.

소크라테스의 ‘진정성’있는 삶이란, 스스로 열망하고 선택할 삶이 무엇인가를 캐묻고 거기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곳에 자신을 위치 지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궁극적인 배움인 것이다. 위대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를 밝히 드러내 보이는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많은 것을 누리고,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소유를 탐함에도 공허와 우울과 무기력으로 약에 의존하다가 결국 자신을 해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면 답은 간단하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가꾸기보다 부추기는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물결을 아무런 사유 없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하겠다. 안락하고 편리하며 간편하고 효용성의 기능을 떠나 진정으로 자신의 영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찰하고 돌아보는 훈련을 내면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크라테스가 말한 진정성 있는 자기 돌봄의 삶을 살아가게 되며 자유인이 되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도 전혀 늦지 않았다. 당신의 자기 돌봄은 자신만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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