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는 모습
봄이 가는 모습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5.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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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올 때는 더디고 더디더니, 갈 때는 빠르고 빠른 것이 봄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을 좋아한 것도 잠깐, 어느새 봄은 떠나갈 채비를 한다.

산야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봄꽃들은 어느덧 공중을 날다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자리를 한층 짙어진 녹색 잎사귀들이 차지한다.

꽃이 필 때면 사람들은 시끌벅적 요란을 떨지만, 꽃이 질 때는 그저 지켜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기다리던 손님이 올 때는 반갑지만, 갈 때는 서운한 법 아니던가? 이러한 의미에서 늦봄의 정서는 서운함이다. 당(唐)의 시인 전기(錢起)는 이러한 늦봄에 마침 고향에 돌아와 있었다.

 

늦봄에 고향 산의 초당에 돌아와(暮春歸故山草堂)

 
谷口春殘黃鳥稀(곡구춘잔황조희) : 산골짜기에 봄은 가고 꾀고리도 드물어
辛夷花盡杏花飛(신이화진행화비) : 백목련꽃은 다 지고 살구꽃은 나는구나
始憐幽竹山窓下(시련유죽산창하) : 이제사 어여뻐라
                             숨은 대나무 산속 창문 아래서
不改淸陰待我歸(불개청음대아귀) : 변함없이 맑은 그늘 드리우며
                             나 돌아오기 기다리고 있으니


시인은 모처럼 고향에 돌아왔다.

그의 고향엔 산이 있고, 그 산 어느 골짜기에 그의 초당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고향인지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골짜기 입구에 들어서서 보니, 봄은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흐드러지게 지천으로 피었던 봄꽃들은 하나둘씩 모두 져버리고, 그 영화의 잔재들인 떨어진 꽃잎들만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꽃들과 어우러져 봄의 흥취를 소리로 토해내던 꾀꼬리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는지, 그 울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시인이 찾은 고향 산골짜기에서 봄이 가고 있는 것이다. 골짜기를 하얗게 수놓았을 백목련(辛夷花)은 꽃이 모두 져버렸고, 분홍빛으로 골짜기를 물들였던 살구꽃은 이제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을 날고 있었다.

봄이 떠난 것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시인의 눈에 그간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으니, 산속 초당 창문 아래서 조용히 자라고 있던 대나무가 그것이다. 시인에게 이제는 이 대나무가 가장 어여쁜 존재가 되었다.

봄이 가는 것을 잡을 수는 없다. 꽃이 졌다고 마냥 슬퍼할 필요도 없다.

꽃이 진 자리에 찾아온 녹음방초(陰芳草) 또한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눈에 잘 띄지 않던 산 대나무가 갑자기 어여뻐 보이는 것은 늦봄의 마술 덕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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