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볼 일입니다
두고 볼 일입니다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05.1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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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고대 그리스어의 코이네 방언으로 된 신약성경 원전의 일부가 우리말로는 이렇게 옮겨지기도 했더군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벌써 꽤 오래된 일이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위의 이야기를 몇몇이 연극으로 각색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사마리아 사람 역할을 맡은 친구였습니다. 키가 크고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던 그 친구는 커뮤니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러 가지 환경에 익숙하진 않았었죠.

정해진 공연일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몇 날 밤을 새우다시피 준비를 했지만, 가장 커다란 걱정은 주인공의 연기력이었습니다. 달라지는 게 별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리허설까지 마치고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겼지요.

공연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었습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를 만난 이를 업어야 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말한 대사가 예상을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자, 어서 나를 업으시오.”

관객의 반응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함께 무대에 올랐던 다른 캐릭터들의 웃음보가 터질까 봐 조마조마했지요.

주인공을 맡았던 그 친구는 다행히도 장성해서 배우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배우가 어디 만만한 일은 아니잖아요.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보다 얼굴에 큰 점이 한 개 더 있다는, 찬 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무대 밥을 먹고 살아온 오달수도 은사인 이윤택에게서 ‘배우’라는 말을 듣는 데 걸린 시간이 20년이라고 하잖아요.

주인공을 맡았던 그 친구는 나중에 고대 그리스어의 코이네 방언도 공부 하고 두루두루 견문을 넓히더니, 이제는 종교계의 존경 받는 전문 사역자로서 그때와는 다른 무대에서 일주일에 몇 번씩 드라마를 연출하는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강도를 만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서고 있지요. 젊은 날 연극을 하던 그때는 당황하고 긴장해서 하지 못했던 대사를 알맞게 건네면서 말입니다.

“자, 어서 내게 업히시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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