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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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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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원의 행복
임 동 현 <(사)징검다리 대표이사>

초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어릴 적 우리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연탄불이 추억으로 다가온다.

1980년대 이전 어렵게 살던 시절에 우리는 연탄 한 장이면 밥을 지어 끼니를 해결하고 따뜻해진 아랫목에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밤을 지낼 수 있었다.

그 시절 난방용 연탄은 따뜻하게 아랫목 한구석만을 데워주던 까닭에 가족들 간의 아랫목 차지 다툼도 치열했었다. 당시 연탄에 얽힌 우리 이웃의 풍경도 인상적이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던 가난한 달동네에는 저녁때면 새끼줄에 두어장의 연탄을 끼워들고 봉지쌀과 함께 골목을 오르던 가장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나이가 40대 이후의 세대라면 아련한 추억에 코끝이 찡해 올 것이다.

또 등·하굣길에 학교 정문앞 담장 밑으로 코흘리개 고객인 우리를 기다리던 별 모양, 동물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을 찍어내던 '뽑기 아줌마'와 고소한 냄새를 풍겨 허기진 배를 더 허기지게 했던 '번데기장사'. 이 모두 빨갛게 피어오른 연탄불에 보글보글 녹여가며 부풀려 먹던 그때 그 맛을 40대 이후 장년층은 지금도 잊지못할 것이다.

또 부모님에게 칭찬 받으려고 부엌 한쪽에 쌓아 놓은 연탄재를 집 앞 빙판에 들고 가서 잘게 깬 뒤 골고루 펴 놓으면 동네 어른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잘했다고 칭찬을 하기도 했다.

밤에는 순번을 정해 부모님대신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갈던 효자 효녀들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었다.

당시 연탄을 가는데도 많은 기술이 필요 했던 것 같다. 상탄과 하탄의 구멍 맞추기는 기본이고, 그 전에 위에 놓인 불씨 탄을 아래 연소를 마친 탄과 분리하는 것도 다소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한 것 같다. 이렇게 연탄을 갈고 나서 불이 조금 남은 연탄재에 소변을 볼 때 나는 치~익 소리도 은근히 재미있었다.

이렇게 많은 추억으로만 자리했던 연탄이 석유로 대체돼 사라졌다가 IMF이후 다시 수요가 증가하더니 올 겨울 매서운 추위와 함께 서민 곁으로 다시 오고 있음을 느끼며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언론에서도 예전에는 찾아 볼 수 없던 연탄관련 뉴스 기사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불경기속 연일 기름값이 치솟는 바람에 연탄 때는 가정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며, 연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들어져 검은 연탄이 금탄됐다는 소식, 또 이 어려움을 이용, 정치인들이 달동네 연탄 배달을 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것까지 이제는 추억이 아닌 겨울 찬바람 보다도 더 매서운 현실로 어려운 우리 이웃에게 다가와 있는 것 같다. 요즘 연탄 한 장이 300원이다. 아이들도 300원은 돈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게 지금의 현실인데 300원이 없어 찬방에 다 해진 이불을 겹겹이 쌓아 놓고 호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지내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불공평한 세상에 분노가 치밀고 가슴 한구석이 미어진다.

어느 통계 자료에 보면 월소득 100만원 이하 4인기준 가구의 순수 난방비는 72만원인 반면 소득 500만원 이상 가구는 62만원이라고 한다. 이는 세금이 싼 도시 가스를 쓰는 부유층 보다 개별 난방을 하는 서민들이 오히려 난방비 부담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렇듯 우리 서민들의 생활이 많이 힘겨운 요즘, 사실 식사 후 후식으로 마시는 자판기 커피 한잔 300원이 갖는 행복감은 단 몇 분에 그치지 않지만 연탄 한 장 300원의 행복은 우리 이웃 한 가정이 5시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제 추억만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어 지내기보다는 어려운 우리 이웃의 '300원의 행복'에 다같이 동참하여 추위에 힘겨워 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행복한 연탄불을 지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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