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관광을 하며
효도관광을 하며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5.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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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참으로 특별한 제주도 나들이였습니다. 내 의지와 내 돈으로 갔다가 온 게 아니라 두 아들의 선의와 출연으로 모처럼 전 가족이 함께한 여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날 출발해서 어버이날 돌아오는 3박4일 간의 꿈같은 효도관광을 했지요. 좋았지만 왠지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벌써 효도관광을 받을 나이가 되었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짠했고, 마냥 철부지라 여겼던 녀석들이 어엿하게 장성해주어 고맙기도 하고 대견해 가슴이 찡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흔한 효도관광 한 번 받지 못하고 생고생만 하시다가 세상을 등진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몹시 아프고 시렸습니다.

부모님께 효도관광 한 번 못 시켜 드린 불효자가 염치없이 제 자식들에게 이런 호강을 받나 싶어 부끄럽기도 하고 한스러워 속 울음을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증손녀까지 3대가 단란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시고 흐뭇해하실 거라 애써 자위하며 두 아들이 마련한 이벤트를 고맙게 받았습니다.

이번 여정의 백미는 단연 네 살배기 손녀였습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보다, 제주도의 맛있는 음식보다 손녀 재롱 보는 재미가 더 좋았으니까요.

아내와 손녀 사랑받기 경쟁을 할 정도로 손녀의 재롱에 넋이 빠진 바보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가족과 함께 하는 효도관광이 좋은 가 봅니다.

효도관광은 세 가지 전형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어르신들을 모시고 온천과 유원지로 다녀오는 단체관광과, 회갑ㆍ칠순 때나 은혼식ㆍ금혼식 때 자식들이 제주도나 국외관광지로 여행을 보내드리는 패키지관광과, 노부모를 모시고 전 가족이 떠나는 가족여행이 그것입니다.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위해 산과 들과 바다로 캠핑 가듯, 자식이 장성해 부모를 모시고 여행하면 그게 바로 효도관광입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효도관광,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자식들이 출가하면 부모 한 쌍이 더 생겨 양쪽 다 해드려야 하는 부담이 있고, 형제·자매들이 시간을 똑같이 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생활형편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있어도 비용과 시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가족이 함께 여행한다는 자체가 너무 좋아 마지막 날 두 아들에게 한번은 너희가 마련하고 한번은 내가 마련할 테니 가족여행을 일 년에 두 번씩 정례화하자고 했다가 무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처가 까지 일 년에 네 번 해야 해서 무리라는 것입니다.

아비의 제의를 단칼에 잘라버리는 두 아들이 순간 야속했지만 이 또한 부질없는 욕심이라 여겨 아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하긴 설과 추석명절 때 와야 하고, 아비ㆍ어미 생일 때와 조부모 제사 때 내려와야 하니 며느리가 좋아할 리가 없지요.

제주도는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수차례 다녀온 곳이나, 매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간 곳을 재탕해 감동이 반감되곤 했습니다.

이번엔 큰아들이 렌터카로 단체관광객들이 놓치고 가는 지역명소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을 찾아다닌 덕분에 날마다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여 제주도의 내밀한 속살과 민 낯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는 역시 대한민국 관광의 보고였습니다. 그 보고가 돈 많은 중국인들 손에 넘어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자칫 나라의 우환거리가 될 소지가 있으니 더는 막아야 합니다.

아무튼 관광도 건강해야 즐길 수 있습니다. 무릎이 아파 좋아했던 올레길을 포기한 아내처럼 이젠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니라 건강후경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건강 잘 챙겨서 마음껏 효도하고 마음껏 효도 받기 바랍니다.

효도관광은 사랑이자, 건재함과 존재감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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