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6.05.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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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악! 비명이 절로 새어나왔다. 승용차 문을 닫다가 손이 끼어버린 것이다. 섬뜩하기에 들여다보니 오른쪽 중지와 약지 손가락에서 피가 난다. 살갗도 패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금세 가슴이 뛰고 머리가 띵해지면서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조심성이 없는 내 탓이다.

동승한 이들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봐도 통증은 더 심해지고 피도 멎질 않는다. 사람이 피를 보면 두려움에 혼란이 오나 보다. 지혈하려고 손가락을 누르니 힘이 쏙 빠진다.

집에 돌아와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이고 진정을 해 보지만 피가 멎질 않는다. 치료를 해주던 남편은 손가락이니 괜찮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 말은 모르는 소리였다. 늦은 시간에야 지혈됐지만 화끈거리고 쑤셔오는 통증이 더욱 심해져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뼈에 이상이 없지만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란다. 상처도 통증도 오래갈 것이라 했다.

어느 집이거나 주부는 집안의 손이어서 할 일들이 태산 같다. 삼시세끼 먹기 위해 물을 만져야 하고, 설거지며 청소며 세수하는 일도 한 손으로 하자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반찬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다가 상처 난 손가락이 부딪히면 아찔하도록 통증이 온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태껏 양쪽 두 손으로 지체의 자유를 누렸다는 것에 대해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예전에는 길쭉하고 예쁜 손을 가진 여성을 볼 때마다 못생긴 내 손이 부끄러웠다. 가끔 모임에 간다거나 외출했을 때 매니큐어를 바르고 반지를 껴도, 짧고 투박한 내 손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마뜩찮았다. 문득, 얼마 전 TV 프로에서 본 예술가가 떠올랐다.

그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서예크로키의 대가 석창우 화백이다. 젊은 시절 그는 갑작스런 감전 사고를 당해 양쪽 팔을 잃었다고 했다. 두 팔을 잃은 고통 속에서도 그가 붓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힘이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 의수를 낀 채 아들을 위해 첫 번째 그림을 그려주었다. 가느다란 의수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작품, 그것은 손의 기교가 아니라 온몸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은 안타까운데 그는 오히려 평화롭다. 절묘한 붓놀림에 시공간을 뛰어넘는 역동적인 그림, 그의 30년이란 시간이 다가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의 두 손은 희망이 되고 있다.

이제야 의수 화가의 평화로움을 알 것 같다. 이렇듯 세상의 빛이 되는 손이 있는가 하면 살생을 일삼는 죄인의 손도 있다.

내 손을 가만히 무릎 위에 얹어본다. 예쁘진 않지만, 오늘따라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제라도 예쁜 손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좋은 손이 되길 소망해 본다.

진정 아름다운 손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베푸는 손이 아닐까 싶다.

혼잣손으로 식구들 바라지에 애면글면 애쓰는 아버지의 손은 위대하다. 또한 가족을 위하여 따끈따끈한 밥과 찌개를 정성껏 끓여놓고 저녁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손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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