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
천륜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6.05.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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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너를 보내고 돌아와 네 시선이 마지막 머물렀을 방안을 들여다본다. 책상 위에 이리저리 널린 과자, 볼펜, 수첩, 양말 등 너의 흔적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널 그려본다.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길가에 시끌벅적 피어 있는 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올해 벚꽃 봤느냐고 물었을 때 너는 무심천에 갔었노라 이야기했지. 거기서 벚꽃을 봤다고. 하얗게 허공을 찌르는 조팝꽃을 보며 이름을 말해주자 너는 이름이 재미있다고 웃었지. 산수유를 보며 생강나무와 산수유의 차이점을 알려주자 너는 웃으며 말했지 생각나무에 생강이 달리느냐고. 난 대답했지. 별꽃에는 별이 안 뜨는 거라고. 그리고 우린 웃었지.

복귀 직전,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린 벚꽃 아래 사진을 찍었지. 평소에 사진 찍기 싫어하는 네가 그저 찍히는 대로 있는 것이 고맙더라.

진달래도 흐드러지게 산허리를 물들이고 있고, 개나리도 노랗게 미소 짓고, 길가에는 제비꽃도 있었지. 하늘빛을 그대로 닮은 봄까치 꽃도 바람결에 손을 흔들고 있었어. 마치 너의 복귀를 아쉬워하는 듯.

강원도라 아직은 저녁바람이 뾰족하게 온몸을 찌르더라. 부대 차는 예정 시간보다 지체되고, 차갑게 몸을 후려치는 바람 속에서 너는 꼼작도 안 하고 있었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라고 하자 군기가 바짝 든 폼으로 안된다했지. 난 네 손을 잡아줬지, 듬직하고 튼튼한 청년의 손이 한 웅큼 잡혔지. 내 손을 놓지 않으려 울먹이던 작은 손이 머리에 바람처럼 휙 불어오더라. 네가 초등학교 때였지. 나는 대학원 공부를 한다고 방학 때면 너를 청학동에 보냈어. 계절학기 공부를 하는 동안 너를 봐줄 사람이 없었던 거야. 지리산 청학동 서당에 놓고 돌아올 때 꼭 잡고 놓지 않던 네 작은 손. 그렁그렁한 눈매의 작은아이.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미안타. 자꾸만 미안타.

어둠을 밟고 돌아오는 고속도로. 피곤했지만 너와 긴 시간을 해서 마음이 뿌듯했다. 문득 네 생각을 하며 차를 모는데, 아는 언니가 전활 걸어왔어. 왕복 7시간을 넘게 부대에 데려다 주고 가는 길이라 하자 그 언니는 혀를 차더라. 난 힘들지만 아들이라 다녀오는 길이라고, 다른 이가 억만금을 주고 오라 해도 다시 가지 않을 길이라고 되받았지.

오죽하면 천륜이라 하겠어? 라고 그녀가 말했지. 그래 우리는 천륜이지. 하늘의 인연으로 정하여져 있는 관계.

네 덕에 오늘 꽃구경 실컷 했다. 너 생각해 본 적 있니? 꽃은 상처라는 걸. 아픔의 상처가 여물고 여물어 꽃이 된다는 걸.

너를 보면 늘 아프다 어릴 적 내 욕심으로 인해 네게 준 상처들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 아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돌아보면 그 시절은 왜 그리 나만 생각했나 모르겠다. 그래서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 특히 너에게 방학 동안 따듯하게 밥 한 번 제대로 못 해준 것이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직도 차갑게 걸려 있다.

네 방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엔 달이 상감된 듯 박혀 있고, 그 달 속에 누군가 불을 환하게 켜놓았구나. 환한 달빛 아래 벚꽃이 하얗게 웃고 있다.

네 아픈 상처들이 잘 아물어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날이 오길…. 보고 싶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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