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역행하는 로스쿨
취지 역행하는 로스쿨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05.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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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돈과 빽이면 통하지 않는 구석이 없다는 나라지만 지금까지 돈이나 배경으로 판·검사 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사법시험이 법전에만 파묻혀 세상물정 어두운 책상물림만 뽑는다는 비판은 있을지언정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만큼은 의심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지 모르겠다. 장차 유일한 법조인 양성 시스템으로 가동하게 될 로스쿨 제도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로스쿨 도입 초기부터 실력보다 배경이 우대받는 ‘음서제’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7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런 걱정은 해소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경북대 신평 교수가 얼마 전 자신의 저서를 통해 로스쿨 입시에서 부당한 청탁이 오간 정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논란이 가열됐다. 한 교수가 “잘 아는 변호사의 자제가 입학원서를 냈다”며 동료 교수들에게 청탁을 하고 다녔고, 실제로 그 학생은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 교수 주관이 배제되는 정량적 심사는 수험생 간 변별력이 크지않아 실제 반영비율이 낮고 교수의 주관이 개입되는 면접이 당락을 결정한다는 신 교수의 주장을 감안할 때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자신도 여러 곳에서 청탁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로스쿨이 ‘금수저’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보통 학생들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인정했다.

교육부도 전국 25개 로스쿨의 입시 과정을 전수 조사한 후 불공정 사례 24건을 적발해 최근 발표했다. 자기소개서에 부모나 친인척의 직업과 직위 등을 적은 사례들이다. 대부분 고위 법관이나 공직자들이다. 자기소개서에 아버지를 소개한 의도는 뻔하다. 우리 정부는 대학입시는 물론 행정·사법시험 등에서도 부모의 직업을 밝히지 못하게 한다. 명색이 법을 가르치는 로스쿨이라면 이같은 규정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 로스쿨은 아예 이같은 기준이 없고, 있더라도 룰을 위반한 행위를 묵인해버렸다. 불합격한 보통 학생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교육부는 경고에 그치겠단다.

사실 로스쿨의 문제는 입시 전형에 국한되지 않는다. 졸업후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합격자들의 진로에서도 부모나 친지의 빽이 위력을 발휘한다. 집안이 좋은 합격자일수록 법원 재판연구원이나 대형 로펌, 대기업 등 물 좋은 곳에 채용된다. 이런 곳에서 쌓은 스팩이 판·검사 임용에서 절대적 잣대가 됨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는 로스쿨 졸업생만 응시할 수있는 변호사 시험이 합격자들의 성적과 석차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는 점이다. 사법연수원 성적대로 판·검사에 임용되고 로펌도 가는 사법시험과는 딴 판이다. 객관적 평가 근거가 제공되지 않으니 채용기관의 변호사 고용에 정실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차를 공개하면 학생들이 시험에만 매달려 법관으로서 소양과 자질을 배우는데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누가 뭐래도 로스쿨 가는 학생들의 지상과제는 변호사 시험 합격이다. 재학생들이 변호사 시험을 위해 과외까지 하는 마당에서 ‘학생들이 시험에 매몰될 것을 우려한다’는 한가한 논리로 성적 보안을 고수하며 불공정을 키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로스쿨 도입의 1차적 목표는 법학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 분야와 계층에서 법조인을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균 연 1500만원에 달하는 비싼 학비부터 내려 서민의 자식들도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소개서에 집안 홍보하는 꼼수를 방조하고, 줄기차게 개선 요구를 받아온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와 학비 인하 등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있는 행태로 미뤄볼 때 로스쿨의 싹수는 노랗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도입 취지와 필요성에 역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스쿨을 없애자고 하면 시대착오로 몰릴 것이 뻔할 터. 해서 로스쿨이 공정성과 투명성을 온전하게 확보해 권력의 대물림 창구에 그치고 있다는 오명을 벗을 때까지 사법시험과 병행하자는 대안에 한표를 던지고자 한다.
 

/권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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