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깨끗함의 불신과 불안
옥시, 깨끗함의 불신과 불안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5.0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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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대한민국 국민은 안전하고 깨끗한 세상에 살고 싶다는 작은 희망을 품는 것조차 용납될 수 없는 것인가.

정부가 공식 집계한 1차 피해 판정에서만 사망 146명, 그리고 현재 확인 중인 피해자까지 합치면 246명 국민이 죽게 만든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국가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또다시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참극이다.

문제는 피해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날 우려가 큰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인데, 현재 정부가 3차 피해접수 이후 4차 접수를 중단한 상태가 여전히 불안하다. 게다가 환경단체 등 민간 차원의 집계와 큰 차이를 보이면서 정부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 숫자만 줄잡아 1천여 명에 달하고 800만 명이 사용된 것으로 추산되는 지경에 이르면 피해자들의 통곡과 더불어 사회 전체의 불신이 되풀이되는 듯하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나 이로 인한 폐 손상의 위험이 사실로 밝혀진 것은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국민이 먼저 나서 옥시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제조책임자의 살인죄 처벌 요구 등이 나오기까지 전혀 대책 마련이 없었다는 점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이 나라가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를 갈망하는 국민을 위한 나라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자꾸만 세월호 참사가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거기에는 병약하고 심약한 국민의 어쩌지 못하는 공포와 불안이 있다. 가습기 사용은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이 힘겨워 적당하고 편안한 습도를 유지하려는 애처로운 몸부림이다. 병을 앓고 있거나 갓난아기를 키워야 하는, 그리고 늙고 힘겨운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지극히 근본적인 인간성과 상대적 나약함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궁여지책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돈을 들여서라도 좀 더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간절함이 살균제를 사용하게 되는 이유인데, 그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단절로 이어질 것이라고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비극이거나 기쁨이거나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에 따른 결과가 반드시 있다. 옥시로 대표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80%를 차지하는 옥시의 뒤늦은 사과와 미흡한 사후 대책에도 피해자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가해자가 있음이라는 논리와 다름없다.

거기에는 추악하고 타락한 자본과 기업 이익 위주의 한국판 신자유주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쯤은 얼마든지 사고팔 수 있다는 악령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악령은 하필이면 심약하고 병약한 어린 백성이 애써 피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나쁜 세균에 기생하면서 급기야 목숨마저 앗아가는 흉기가 되어 버렸으니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졸지에 침몰하면서 수장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순식간의 사고만 비극이 아니다. 영유아와 임산부, 환자, 그리고 노약자에 이르는 힘없는 국민의 피해에도 무려 5년 동안 침묵하며 서서히 세상을 병들게 했다는 점이 불안과 불신의 더 큰 이유다.

뒤늦은 검찰의 수사 착수에서 속속 드러나는 안전 불감증과 유독 우리나라에만 가혹했던 살균제 시판의 악행은 잔인하다. 국민이 실험용 쥐와 다를 게 없다는 절망에서 그들이 선전하는 빨래~끝이 세상 끝이 되는 건 아닌지…. 국민의 불안과 불신의 끝은 언제나 올 것인지 참으로 아득하고 황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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