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저물고
봄은 저물고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5.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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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단 열흘도 피어 있지 못한 것이 꽃이란 말인데, 봄이 와서 꽃이 피기를 학수고대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을 실감할 것이다.

꽃이 피는 것은 반갑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꽃이 지는 쓸쓸함을 생각하면 차라리 피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낙화(花)는 아름다운 경관의 사라짐일 뿐만 아니고, 세월의 흐름에 대한 가장 감각적인 깨우침이기도 하다.

송(宋)의 시인 구양수(歐陽修)가 떨어진 꽃잎을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풍락정 봄놀이(豊樂亭游春三首3)

紅樹靑山日欲斜(홍수청산일욕사) : 붉은 나무 푸른 산에 날은 저무는데

長郊草色綠無涯(장교초색록무애) : 먼 교외로 풀빛은 끝없이 푸르다.

游人不管春將老(유인불관춘장로) : 노니는 사람은 봄 저무는 것 아랑곳없이

來往亭前踏落花(내왕정전답낙화) : 정자 앞을 오가며 떨어진 꽃잎을 밟는다.



나무가 붉어지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 봄에 꽃이 피거나 가을에 단풍이 들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꽃이 꼭 붉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단풍 빛이 반드시 붉은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유독 빨간색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나무는 온통 붉은 것이다.

그리고 산은 풀이 돋아나고 나뭇잎이 새로 나왔기 때문에 푸르다. 이 둘이 합쳐지면 결국 봄이다.

시인은 봄을 붉은 꽃, 푸른 풀과 나뭇잎을 통해 시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여기에 저녁 해의 붉은빛이 더해지면 봄의 빛깔은 그 풍요로움이 극에 달한다.

성문 밖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진 풀빛은 봄이 연출하는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이처럼 좋은 계절이니 이를 즐기려는 나들이객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나들이객들은 붉고 푸르고 환상적인 봄 풍광에 넋을 놓았는지 봄날이 저물어 가는 것은 아예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개를 쳐들고 꽃을 바라보노라 발밑으로 떨어진 꽃잎이 밟히는 것은 의식 못 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상춘객(賞春客)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상감(無常感)이 아니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황홀감이다. 시인은 풍락정(豊亭)이라는 자신의 정자(亭子)에서 봄의 흥취 그리고 이에 넋을 잃은 나들이객들의 모습, 여기에 더해 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낙화(花)까지 봄의 모든 것을 관조하고 있다.

봄은 흘러가는 시간임과 동시에 언제까지나 뇌리에 남아있는 기억이다. 잠시라도 봄의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보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지는 꽃과 함께 가는 봄이 아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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