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사는 재미
진천 사는 재미
  • 박경희<수필가>
  • 승인 2016.05.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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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박경희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신다는 것은 시골에 사는 가장 큰 혜택이다. 그 귀한 공기를 매일 값도 지불하지 않고 마시고 산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주변이 온통 논과 밭이기 때문에 습도가 적당해 가습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도회지에 사는 친구는 방바닥을 걸레질하면 까만 먼지가 묻어난다고 짜증이다. 모처럼 일이 있어 대도시에 나갈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집에 돌아오면 맑은 공기로 심호흡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이 논밭 가까이에 살다 보면 비록 돈을 주고 사더라도 그 먹거리는 아주 싱싱하다. 싱싱하고 질 좋은 채소를 마음껏 먹는 것, 이 또한 매일 매일의 작은 행복이기도 하다. 거기에 오일장을 둘러보는 재미는 얼마나 쏠쏠한지. 장이 서는 날이면 읍내 분위기부터 떠들썩하다. 전국에서 ‘최고의 오일장’을 한 곳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닷새마다 돌아오는 우리 고장 운수대통 진천장을 들겠다. 우선 시장의 규모부터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큰데다, 끝없이 이어지는 좌판에 올려지는 상품도 토속적인 농수산물이나 의류, 신발 같은 일상용품은 말할 것도 없고, 애완동물부터 농기구까지 없는 게 없다.

현대식 슈퍼마켓에 비하면 모두가 옛모습 그대로다. 장터에서 40여 년째 직접 만두를 빚어 팔고 있다는 아주머니의 손만두, 뜨겁게 달구어진 철판에서 부쳐내는 할머니의 메밀부침, 돼지고기를 곱게 갈아 양파와 부추 등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드는 떡갈비, 달달하고 고소한 호떡과 쫄깃한 어묵 등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음식들이 즐비하다. 왕사탕, 젤리, 땅콩사탕, 전병 등 유년시절 추억을 되살리는 과자와 만나는 것도 즐겁다. 이처럼 오일장터는 마치 흐벅지게 벌어진 잔칫집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진천 오일장은 다른 전통시장과는 다르게 규모가 크면서도 옛 정취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장터이다. 장날이면 시장 인근의 대형마트 매상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정도라니 알 만하다. 진천장이 찾는 이들로 늘 북적이는 것은 시장에 좌판을 펴고 앉은 상인들이 직접 심어 거둔 상품들이라는 ‘진정성’ 때문인 듯하다. 장에 나온 좌판의 농산물은 대형마트 매대에 나온 그것과는 대번에 구별이 된다.

할머니들의 정담이 정겹게 오가는 순박한 모습, 흥정하는 소리, 자유롭게 배치된 물건들. 그 시장 안을 천천히 걸으면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며 떡을 사고 오이지를 사고 자반고등어도 한 손 사든다. 마지막으로 좌판으로 꾸민 간이식당 의자에 걸터앉아 장터 국수와 순댓국을 사 먹는다.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여유롭고 풍성하다. 그래서 오일 재래시장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가까운 곳으로 등산한다. 차로 10여 분만 나가면 휴양림과 산림욕장이 있고 이어 등산로가 나타난다. 400여 미터 정도의 높이이기 때문에 오르내리기에 적당하고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하고 조용한 산이다. 등산을 해 보면 그게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를 알게 된다. 가까운 곳에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 그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시골 사는 재미의 하나다.

도심에 눌러 사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특히 어느 특정지역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거기에 크게 집착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거기엔 상대적이긴 해도 잃는 것이 너무 많다.

학승 법정께서는 “사람이 자연에 가까이 살면 병원에서 멀어진다.”라고 했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면서 깨달은 게 그것이다. 시골은 찾아드는 사람을 보듬어 안아 준다. 심신이 함께 건강해지는 게 그것 때문이다.

지금 산야는 또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하다. 들길을 구비 돌아 걷다 보니 귀에 곡식과 열매들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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