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뜯기
산나물 뜯기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6.04.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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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반영호 <시인>

꽃이 진다. 화무십일홍. 산과 들 어딜 가나 향기와 자태를 뽐내며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 꽃이 지자 잎이 돋아난다. 천연 병아리 부리를 닮은 연한 새잎들이 앙증스럽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보다도 아름답다. 이 시기에는 산나물이 한창이다. 산 밑자락에 서 있는 차량이 눈에 띈다.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이다. 야생에서 채취하는 나물은 밭에서 기른 것과는 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산나물채취 시기는 4월 말에서 5월 초가 적기이니 지금이 절정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이맘때 무척 바쁘셨다. 농사일은 아버지가 바쁘셨지만 어머니는 산나물 뜯어 오느라 바쁘셨다.

보릿고개라 할 수 있는 이 지음엔 먹을 것이 떨어진다. 아침 일찍 산에 가면 저녁에나 돌아오는데 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엔 메고, 앞치마엔 차고 오셨다.

참취, 곰취, 수리취, 분취, 비비추, 바위취, 원추리, 고사리, 밀대, 명아주, 다래순, 물레나물, 자귀순, 참죽순, 두릅, 오갈피순, 참나물, 잔대, 도라지, 더덕, 민들레, 쑥부쟁이……등. 채취해온 나물을 다듬으며 흥얼흥얼 노래로 부르시던 산나물들의 이름인데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이름들이 방언이나 사투리였을 터, 아무튼 정확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짓수가 엄청났다.

다듬어 분리한 나물 중 싱싱하고 값나가는 나물들은 오일장에 내다 파셨고, 나머지를 큰 솥에다 삶았다. 나물죽. 그렇잖아도 살기 어렵던 때지만 이 시기가 보릿고개라서 식량이 바닥날 때이었을 것이다. 밥알은 얼마 없고 나물이 둥둥 떠다니는 멀건 죽. 그 죽을 먹는 데는 수저가 필요 없었다. 그냥 대접째 입에 대고 후~욱 마시면 되었다.

너나없이 빈곤한 그때. 우리 집보다 못한, 더 어려운 이웃들이 있었다. 그 멀건 죽을 이웃에 돌렸는데 죽어라 싫던 그 일이 내차지였다. 한집도 아니고 몇 집 되는데 냉큼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에서 서성대기 일쑤였었다. 나눠 주는 일인데, 생각해 보면 창피한 일이 아니었는데, 왜 그리 주춤거렸던지.

시장에서 팔지 못했거나 남은 나물들은 삶아 발에다 말렸다. 잘 말려 습하지 않고 바람 잘 통하는 대청마루 천정에 매달아 두었다가 사계절 먹었다. 그러니까 일년내내 산나물이 밥상의 단골이었으나 역시 제철에 먹는 맛과는 차이가 있었다.

지금이 본격적으로 산나물과 약초를 채취하는 시기다. 이 시기가 되면 독초를 산나물이나 약초와 구별하지 못해 잘못 알고 먹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매년 반복되는 독초 섭취로 인한 식중독 피해 사례가 잇따른다. 대부분의 식중독 피해는 산나물이나 약초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싹이 막 돋아나고 꽃이 피기 전에는 산나물이나 약초를 독초와 구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이맘때 산나물을 채취하려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전엔 밥을 짓거나 난방을 위해 나무나 낙엽을 채취하여 산이 훤했지만, 지금은 우거져 입산하기가 조차 어렵고 풀과 나무들에 가려 산나물을 찾기가 힘드니 벌목한 곳이나 산불이 났던 곳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산에 갈 때는 장화를 신고 가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산에는 독사가 있다.

지난밤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산나물이 실하게 올라왔겠다. 어머니가 나물을 다듬으시며 부르시던 그 정겨운 노랫소리가 귀가에 들려온다. 참취, 곰취, 수리취, 분취, 비비추, 바위취, 원추리, 고사리, 밀대, 명아주, 다래순, 물레나물, 자귀순, 참죽순, 두릅, 오갈피순, 참나물, 잔대, 도라지, 더덕……. 아, 그리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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