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의 갓 올라온 잡초를 보며
들녘의 갓 올라온 잡초를 보며
  •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형기)
  • 승인 2016.04.28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형기)

어느덧 봄이 완연해 졌습니다. 남녘에서 올라오던 꽃소식이 우리 지역을 지나 간지가 한참이나 되었습니다.

봄 하면 새싹을 떠올리게 되고 이어서 피어나는 꽃이 떠오릅니다. 무심코 바라보는 새싹들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부드러운 공기 중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대지를 뚫고 올라옵니다. 그것도 굳세고 강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여리디 여린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짝 손만 대도 으스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새싹을 다시 땅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불가사의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이지요. 바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한 모습일 것입니다.

들녘의 잡초는 내일 누군가에게 밟혀서 짓이겨질지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묵묵히 자라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꼭 힘없는 우리에게 보고 배우라는 듯이 말입니다.

분명 그 잡초에도 주어진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도,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잡초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잡초는 자신의 역할이 보잘 것 없다 하여 스스로 죽어버리지도 않습니다. 누가 짓밟는다고 항의도 하지 않습니다. 밟으면 밟히고 뽑으면 뽑히면서도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아마 내년에도 그 자리에서 다시 새싹을 틔우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리는 나의 적성에 꼭 맞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잡초처럼 자기 역할을 다하라고 주어진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일모레 다른 데로 옮겨 간다고 지금의 역할을 소홀히 하거나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자리가 꽃자리’라고 깨우쳐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내 자리를 꽃자리로 만드는 지혜 그 지혜가 이 화창한 봄날에 잡초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내 자리를 꽃자리로 알고 정성을 다하여 살아갈 때 우리는 ‘보람’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