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과 주름
이랑과 주름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6.04.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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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방풍림 사이로 연둣빛 무리가 꿈틀댄다.

빗살처럼 줄지어 선 삼나무 틈새로 삐져나온 햇발에 순간 어지럼증을 느낀다.

음침한 그늘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다. 아니 그의 원형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 단숨에 구릉지 중턱에 올라 있다. 그 유명한 보성 차밭이다.

빛깔이 다른 파도가 일렁인다. 누가 이곳을 차밭이라고 부르던가. 그 누가 높디높은 산등성이에 파도를 부른 것인지 묻고 싶다.

나의 눈엔 긴 이랑이 마치 밀물과 썰물 오가듯 물결로 잔잔히 일렁인다. 그것이 찰나의 풍경인 양 시린 눈을 깜박이지 못한다.

그의 본모습을 어찌 부인하랴. 두둑과 고랑이 만든 이랑의 아득히 뻗어나간 수많은 사래 긴 차밭. 지상에서 산 등을 올려보면 광활한 푸른 들판처럼 보이나, 해발 350m 고지에서 내려다본 차밭은 켜켜이 쌓아놓은 이랑일 뿐이다.

차밭을 일군 이의 노고를 헤아린다. 처음에 이곳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었단다.

황무지를 개척하듯 쉼 없이 갈아 두둑을 만들고 고랑을 내 한 계단씩 올라갔으리라. 잦은 풍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으리라. 허물어진 이랑과 차밭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그의 얼굴에도 주름이 하나씩 더했으리라.

이런 생각에 미치자 사유의 깊이가 없음을 시인하는 결과이다. 차밭을 그저 아름다운 풍경쯤으로, 민무늬를 그리는 강물처럼, 잔잔한 파도가 오가는 바다처럼 감상했으니.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산 등에 차밭을 가꾼 땀 흘린 그의 노고를 그리다 기행 중에 스친 어느 촌부의 얼굴과 겹친다.

시끌벅적한 정남진 장터거리다. 장터를 거닐다 한 상점 앞에 쌓아놓은 짚신 더미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노인은 자신의 상점 앞에 사람이 어른거려도 시선과 손놀림에 변함이 없다.

호객행위를 하는 주변 상점들과는 다르게 상점 앞에서 한참을 주저거려도 안중에 없는 듯 작업에 열중이다.

키를 삼는 것인가. 짚으로 가는 새끼를 꼬아 날을 삼아 완성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총이 매우 성글고 굵은 석쇠 짚신, 발을 편하게 앞쪽에 약간의 총을 타서 코를 낸 것은 세코 짚신. 사람이 신기엔 큰 짚신과 아기에게도 작을 법한 앙증맞은 짚신과 손바닥만 한 키들. 선대의 인기를 끌었던 짚신과 크고 작은 광주리가 이젠 장식용으로 전락하여 시선을 끌고 있다.

검게 그을린 손에서 시선을 옮겨 노인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굵게 골을 낸 주름살이 이마를 덮고 있다.

지금은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업(業)이다.

짚으로 삼아 세끼 풀칠을 어찌할 것인가에 이르자 걱정이 앞선다. 상점 벽의 중간쯤 걸려 있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란 액자가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아니 그의 얼굴에서 드러난 표정은 모든 것을 초월한 듯싶다.

결곡한 삶의 물결은 나에게 의미심장한 의미를 안겨준다.

차밭의 이랑을 곱게 일군 이의 열정 어린 땀과 장터에서 만난 노인의 얼굴에 드러난 주름살이다.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변함없이 자신의 길을 걸으며, 오로지 자기 일에 충실할 뿐이다. 노인의 얼굴에서 나타난 묵묵함이 나를 인도한 것인가.

물결처럼 흐르는 주름의 의미를 되새기고야 내가 만든 심연의 미로에서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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