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왕이 된 남자 그리고 한국문학관
셰익스피어와 왕이 된 남자 그리고 한국문학관
  • 정규호 <문화기획자>
  • 승인 2016.04.26 1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 정규호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다른 학교 아이들로부터 유난히 비난을 받는 일이 많았다.

교실에 앉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소풍이거나 운동회날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는 소문 탓인데, 지금 생각해도 꽤 자주 낭패가 있던 듯하다. 소풍 또는 운동회가 우리 학교와 겹치면 지청구를 받기 십상이어서 공연히 죄지은 것처럼 조바심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속설의 배경에는 어김없이 그럴싸한 이야기가 겹쳐진다. 우리 학교 마당에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을 메우던 날 하늘로 올라가던 이무기를 학교 소사가 삽으로 때려죽이는 바람에 큰 행사 때마다 비가 온다는….

고교시절에는 학교 뒷산 커다란 오동나무가 신비한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퍼져 나갔다. 이 나무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인데, 물론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지어낸 이야기가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이 되고, 그것이 구비문학(口碑文學)의 전형임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문화콘텐츠의 근간이 되는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청주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기획의 바탕에는 이런 구비문학에 대한 학습효과가 깔려있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은 이처럼 머릿속에 각인되면서 개인이거나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동시에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 또한 만들어내는 저력이 있다.

올해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그 기일은 지난 23일이었다.

20여 년간 38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작은 노래라는 뜻의 유럽 정형시의 일종. 편집자 주)를 써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여왕의 말이 있을 정도의 긍지와 자부심 그 자체이다.

심지어 죽음 자체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실존인물이 아닌 필명이거나, 공동창작물이라는 설이 있을 만큼 신비의 대상인데, 그 문학적 성과는 가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셰익스피어와 비교할 수 있는 ‘신비’가 우리에게도 있다. 지난 2012년 제작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그것인데, 공교롭게도 세익스피어가 타계한 1616년, 조선왕조실록 광해8년에 사라진 15일간의 왕에 대한 기록이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되고 있다.

이병헌, 류승룡과 더불어 청주출신 한효주가 출연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왕위를 둘러싼 살벌한 권력 다툼과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붕당정치의 와중에 생명에 위협을 느낀 왕 광해가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해 위험스럽게 노출되는 대역을 만들 것을 지시하면서 이야기 줄거리가 만들어 진다.

사라진 기록에서, 기록의 예술인 문학(이야기)이 만들어지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놀라운 상상력, 그리고 3000여개의 단어와 표현을 고안하면서 성서 다음으로 인용이 많은 작가 셰익스피어의 창의력은 문학이 인류와 더불어 영원히 지속가능할 것임을 확신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때마침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이 가시화되면서 지자체마다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가운데 청주도 총력전을 펼치면서 ‘문학’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청주 유치의 당위성에는 어김없이 ‘직지’가 등장하는데, 기록유산과 문학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과연 그동안 우리는 기록유산으로서의 ‘직지’에 대한 문학적 천착의 궁핍함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