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 봄맞이는
올해 내 봄맞이는
  • 김태종<삶터교회 목사>
  • 승인 2016.04.2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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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김태종

언제부터인가 봄이면 봄맞이, 여름이 다 피어오르기 전에 여름맞이, 그리고 가을엔 또 그만한 즈음에 가을맞이와 겨울의 겨울맞이를 하며 살 줄 알게 되었습니다. 계절을 맞이한다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젊었을 때는 계절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젊은 여자들의 옷차림이 달라지는 것에서 느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연 곧, 생명의 질서라든가 그 순환구조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살피기에 젊음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나이였다고 돌아보며 씁쓰레하게 웃곤 하는데, 아쉬움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계절맞이를 배웠습니다. 그건 아주 사소한 계기였습니다. 동네에 지능이 좀 떨어진다는 나보다 스무 살 정도 더 나이가 더 많은 외가 쪽으로 조카뻘 되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업신여기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또래들은 아무도 그와 어울려주지 않으니 언제나 그와 정신연령이 비슷한 대여섯 살쯤 된 아이들과 노는 겁니다.

그와 어울리는 것은 우리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는데,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 그를 따라다니며 햇살 좋은 이른 봄이면 볕 바른 곳에 일찌감치 싹을 내민 달래를 찾아다니고, 이어 달래가 쇨 무렵이면 찔레를 꺾으러 다니기도 하고 가재를 잡으러 다니고, 이어 멧새가 알을 낳을 때는 멧새의 알을 찾아 꺼내다 먹고, 꿩이 알을 낳는 데를 뒤지기도 하면서 한 해쯤, 또는 그보다 조금 더 그의 손을 잡고 들과 산과 물을 헤집고 다녔던 일이 예순 해가 다 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가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서게 되고 그렇게 학교에 다니며 산 세월이 내 삶의 절반쯤 되는 서른 해 남짓 되는 결코 짧지 않은 나날이었습니다. 그때에는 그 어디에서도 자연의 흐름이나 생명의 순환구조, 그리고 그것을 따라 사는 일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전에 몸에 익힌 것마저 희미해질 무렵까지 공부라는 것을 한다고 허둥지둥 내달았습니다.

뒤늦게야 생명의 순환구조를 알아차리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계절맞이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계절맞이를 다 말할 필요는 없으니 봄맞이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내가 봄을 느끼기 전에 이미 봄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제법 이른 봄에 봄맞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물이 오르는 나무들을 느끼기, 그것들을 호흡으로 만져보기, 냉이와 씀바귀를 캐다가 함께 삶아 무쳐 봄나물을 먹고, 그 무렵의 달래를 캐다가 부침개를 해 먹기도 하고, 이어 홑잎나물과 산란 철에 활동이 왕성해지는 물고기 잡는 것들이 일련의 봄맞이였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좀 다른 봄맞이 하나가 더 늘어났습니다. 바람결 포근한 날 물가에 나가 한나절을 일없이 보낸 적이 있습니다. 겨우내 추웠는데 바람 부는 쪽이 막힌 양지에 앉아 듣는 물소리가 이제껏 들은 어느 음악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만저만한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언덕배기를 넘어온 바람이 내 살갗에 닿는 것을 즐기기 몇 번, ‘바람이 가슴을 씻는다’고 느끼는 순간의 행복, 봄바람에 겨우내 얼었던, 그리고 살면서 세파에 시달려 패이고 깎이고 찢긴, 쓸데없는 욕심으로 오염된 것들을 씻어주는 것을 느낀 순간의 행복, 이제 여름맞이가 가까워지는 계절, 이런 계절맞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의 즐거움이 있더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닫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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