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봄나들이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4.2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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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은 감각의 계절이다.

몸의 모든 감각기관이 분주하게 작동하며, 봄의 향연을 만끽한다. 눈은 눈대로, 코는 코대로, 귀는 귀대로 봄을 영접하기에 바쁘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봄의 기운은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

이러한 봄의 감각은 아무래도 번화한 도회지보다는 한적한 산골이나 호반에 더 잘 어울린다.

당(唐)의 시인 서부(徐俯)는 호숫가를 거닐며 봄의 정취를 만끽하는 기쁨을 누렸다.


봄날 호숫가에서(春日游湖上)


雙飛燕子何時回(쌍비연자하시회) : 쌍쌍이 나는 제비 언제 돌아왔나

夾岸桃花蘸水開(협안도화잠수개) : 언덕을 끼고 복사꽃은 물에 잠겨 피었네

春雨斷橋人不渡(춘우단교인부도) : 봄비에 다리 끊겨 아무도 오지 않는데

小舟撑出柳陰來(소주탱출류음래) : 쪽배 한 척 버드나무 그늘 헤치고 나온다



호수는 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에 최적화된 무대이다.

맨 먼저 무대에 오른 것은 한 쌍의 제비였다.

지난가을에 떠나갔던 제비가 언제인지 모르게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제비가 날아 들어온 것을 신호로 봄의 무대는 그 서막을 올렸다. 무대 한켠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물을 끼고 양쪽 언덕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중 어떤 것은 물에 잠긴 채로 피어 있었다.

복사꽃은 봄이 무르익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봄이 또 지나가고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물 안에 잠긴 채 피어 있는 복사꽃은 그 하나만으로도 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바깥 공기만큼이나 물이 따뜻해진 거며, 복숭아나무가 돋아난 이파리와 피어난 꽃의 무게를 못 이겨 휘어져 물에 잠긴 거며,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이 물에 잠기어 흔들거리는 거며, 따뜻하고 화사한 봄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사이 내린 봄비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끊어져 버렸고, 그래서 사람이 건너올 수 없는 게 여간 안타깝지 않았다. 잘 차려진 봄의 밥상을 혼자 받은 기분이랄까?

아무리 좋은 봄의 풍광이라 할지라도 혼자라면 어딘지 쓸쓸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호숫가 버들가지 늘어진 새로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봄을 함께 즐길 사람이 드디어 나타난 것인데, 이것으로 시인의 봄나들이는 완성되었다.

아무리 감각이 무딘 사람이라 할지라도 봄의 감각 융단폭격에 반응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웬만한 감각의 소유자라면, 눈, 코, 귀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감각의 봇물에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할 일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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