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6.04.2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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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오솔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양쪽으로 늘어선 소나무들이 그윽하게 솔 향을 품어내고 있다. 그 향기가 싱그럽고 고마워 눈을 지그시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켠다. 온몸의 세포가 도시의 찌든 기운을 몸 밖으로 내보내느라 아우성이다. 기지개를 켠다.

한 달 중 유일하게 자유로운 24시간, 오늘은 비릿한 생닭의 냄새도 안녕이고 따르릉 전화소리에 같은 레퍼토리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내 모습과도 잠시 이별이다. 이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나는 지금부터 삶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고 멋진 사람이 된다. 오늘 하루는 한 달을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을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오늘 하루를 뺀 나머지 날들을 살아내고자 숨 고르기를 하는 셈이다.

하루를 얻고자 십 년이란 긴 시간을 투자했다. 주5일제 근무에 공휴일까지 휴일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었다. 한 달 중에 기껏해야 하루의 온전한 휴식을 생각한다는 것조차도 사치였다. 무엇보다 무겁게 짊어진 삶의 짐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 짐들을 하나둘씩 해결할 때마다 가벼워지는 마음의 무게 때문에 살았다. 때때로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쏟아낼 만큼 힘들었어도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구구절절 하소연도 하지 않고 살았다. 피해갈 수 없으면 기꺼이 즐겨보겠다는 나름의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참 지독하다고 수군거렸다.

오늘 하루가 열심히 살아온 일상을 내려놓고 휴식을 위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것이라면 지나온 하루하루는 마음으로 짊어진 짐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삶의 숨 고르기를 한 것이다. 달리던 자전거 페달을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더욱 짙어진 숲의 향기에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오솔길 끝자락에 와 있다. 계곡에서 청량하게 물 흐르는 소리에 장단이라 맞추듯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하루, 세상 사람 모두에게 주어지는 평등한 시간이다. 내가 즐기는 오늘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하루임이 분명하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불행해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숨 고르기는 필요하다. 내가 지난 시간 전력 질주하며 삶의 숨 고르기를 하는 동안 절대 잊지 않고 지켜낸 것이 있다. 그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얻어낸 결과가 한 달 중 하루인 24시간인 것이다. 기껏해야 하루를 위해 그리 오랜 시간을 고생했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숨을 고르기 위한 시간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늘 하루는 그 긴 시간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온 덕분일 테니 말이다.

그동안 내가 살아낸 하루하루, 오늘 숲 속에서 즐기는 나만의 하루가 무엇보다 가치 있고 여러 날보다 소중하다.

두 팔을 힘껏 옆으로 펼치고 숲 속을 향해 외쳤다.

“오늘 나는 자유다.”

“오늘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오늘은 오직 나만을 위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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