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출발
사월의 출발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6.04.2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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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결혼은 도통 생각 없는 것 같던 큰딸이 오늘 사월의 신부가 되었다.

제 동생이 5년이나 먼저 결혼했어도 그저 태평하던 아이다. 결혼적령기가 딱히 있는 건 아니나 나는 딸의 나이가 슬슬 마음 쓰이던 차였다. 그러다 배필을 만났으니 마땅히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신부 엄마라는 사람이 남세스러운 것도 모르고 예식 내내 싱글벙글했다.

하객들이 돌아가고, 신랑·신부도 신혼여행지로 떠나고, 나도 작은아이 내외와 손녀딸과 한 차로 귀가했다.

음성이 가까워지자 평택과는 판이한 풍경이 끝없이 이어졌다. 사람이 만든 위대한 도시가 평택이라면, 자연이 만든 위대한 도시는 음성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자연은 높고 낮은 산의 겉옷으로 연초록 옷을 입히고, 속살은 분홍빛 진달래꽃으로 가리고 있었다.

겨우내 빛을 잃고 야위어 가던 산도 겉옷, 속옷을 따로 지어 입느라 생명의 빛깔로 분주한 달, 어쩐지 신랑·신부의 앞날도 이 사월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통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낮에는 밀린 숙제를 마친 것처럼 시원하기만 했는데 불과 몇 시간이 겨우 흐른 지금 잠을 청할수록 만사가 다 걱정스러우니 이 무슨 심사인가. 우리 새 사돈도 나처럼 이 시간 잠을 못 이루실까.

아들 둔 부모라고 마냥 편하기야 할까만, 딸을 둔 어미는 오만 가지가 다 염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내 딸이 매사 어설프다면 오죽하랴. 앞으로 딸아이가 카페 운영과 가정생활 둘을 동시에 잘해낼 수 있을지, 대가족인 시댁 식구들과의 화합이나 소통은 무난하게 할 수 있을지, 늦은 나이만큼이나 확실하게 자리 잡았을 각자의 개성 때문에 충돌이 잦지나 않을는지 등등.

“세상에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없다.”

내 어머니가 생전에 자주 하신 말씀이다.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그만큼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살아보니 그 말씀이 어찌나 지당하신지. 한 그루의 나무를 키우는 일도 그저 대충 해서는 그 기쁨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한 가정을 꾸려 가는 일에야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하랴.

경험으로 보아 행복이라는 씨앗은 어찌나 도도한지 호락호락하게 꽃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이 아니었다. 더러는 온 마음을 다해, 더러는 아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정성 들여 가꾸어야 한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행복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혼자 걸어오다가 이 사월에 짝과 손잡고 함께 갈 내 딸, 그리고 내 사위. 일 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달, 누구나 마음의 씨를 뿌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월, 지금은 모든 생명이 기나긴 마라톤에서 막 출발점을 통과한 것처럼 앞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이때 새로운 시작을 한 딸 내외의 앞날도 사월의 출발처럼 활기차고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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