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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04.2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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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밤하늘을 보면 ‘어린왕자’가 산다는 B612 행성과 선생님이 떠올라요.”

언젠가 학생들한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일곱 행성에 나오는 어른들을 상징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아마 그 영향인 듯하다.

그 수업 이후 ‘별’이 좋아졌다는 아이, 매일밤 별을 감상하고 별자리 신화는 물론 별자리 모양을 살피느라 밤하늘에 푹 빠져 산다는 제자가 있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장래희망이 연예인에서 작가로 바뀌었다는 제자는 날마다 시 한 편을 써서 보여 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빈 초록색 색지를 들이민다. 6학년 국어시간에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 쓰기’하는 장이 있어서 나를 지목하여 편지글을 썼기 때문에 답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늘 생각이 깊고 우물 같은 아이, 선생님은 예현이가 감성으로 밀어올리는 예쁜 발톱을 지켜보는 일로 행복하단다. 개구리는 우물 밖 바다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많은 독서와 사색으로 다양한 세상을 알아가는 인문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행복할 수 있으므로….”

수업시간에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부드럽게 일러주는 그 모습이 놀라우면서도 존경스럽다며 부끄럽게도 나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선생님으로 비유하였다. 제자가 바라보는 나의 브랜드 네임은 별 선생님이다.

지난 청주예술제가 한창인 시기 제12회 산강하늘 백일장에 가르치는 학생들이 참가했는데 6학년 아이들 네명이 학교 교감선생님 직인이 찍힌 면담요청서를 갖고 느닷없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국어책에 면담 프로젝트 프로그램이 있는데 직업 탐방으로 ‘시인’을 책정하였단다.

시인이 되는 필요조건이 무엇이냐는 학생들에게 구양수의 ‘삼다(三多)’인 다독, 다상량, 다작을 들고 덧붙여 대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 따뜻한 덕목을 갖춘 인성을 충분조건으로 두면 좋겠다고 답했다.

시인의 미래 전망을 묻는 답으로는 시인의 가슴엔 천사가 살기 때문에 누구보다 늘 행복하고 대상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니 삶이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우문현답일까.

시인을 면담하러 왔다가 예의상 그냥 갈 수 없다며 원고지를 받아 와서 정성껏 시심을 심는 아이들의 모습이 천사같이 보이던 날 곁눈질로 학생의 원고지를 살피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시인의 직업이 궁금하여 면담하러 왔다가/ 시냇물에 몸 맡기고 시인처럼 시를 쓰는데/ 어느새 몸이 점점 시냇물처럼 흐르더니/ 시가 줄줄줄 나온다//

그들이 불러주는 ‘별 선생님’, ‘시인 선생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고는 있는가.

문득 어떤 어른으로 살 것인가 생각하니 가슴이 무겁다. 보이는 그대로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들, 그들이 시를 통해 인문정신을 기르고 그 인문정신으로 인류애를 키워가는 주체들로 잘 성장하길, 그래서 21세기가 요구하는 시인의 감성을 지닌 리더들로 우뚝 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최근 피터 팬 증후군(PPS)과 같은 맥락인 키덜트(Kidult)라는 신조어가 있다.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성인)의 합성어로 성인아이라는 의미이다.

어려서부터 주체적 인간으로 살지 못한 삶의 결과이니 어른들이 교육현장에서 놓친 그 무엇을 숨은 그림찾기 해볼 부분이다.

별을 좋아해서 시인이 되고 싶고 시인의 직업이 궁금한 아이들에게 행복한 브랜드 네임들이 펼쳐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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