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벌들
일벌들
  • 최준<시인>
  • 승인 2016.04.2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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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최준

중부지방에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4월 들어서부터 일손이 부쩍 바빠진 한 분을 알고 있다.

꿀벌을 치는 그분 덕분에 얻은 게 참 많다. 그분은 나에게 꿀벌들의 세계를 좀 더 소상하게 관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곁다리로 보고 들어온 게 있어서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에서 살펴본 꿀벌들의 세계는 신비로 가득했다.

산자락에다 나란히 늘어놓은 벌통들은 하나하나가 독립된 제국이었다.

여왕벌과 수벌과 일벌로 이루어진 거대조직은 정연한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개체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여왕벌을 중심으로 지속하는 평화는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운명에 순응하고 자신의 소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적인 질서였다.

여왕벌의 산란은 개체를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었다. 그분의 설명에 따르면 일벌의 수명이 기껏해야 40일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니 오직 한 마리인 여왕벌의 역할은 오로지 산란이었다.

처음 본 여왕벌은 상상했던 것보다 몸집이 크지 않았다.

수벌들에 둘러싸여 일가의 운명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작아 보였다.

제일 바쁜 건 벌통을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일벌들이었다.

벌들에게도 먹고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그들의 날갯짓에서 새삼 확인했다. 알고 보면 꿀벌들의 생존도 일벌들의 날개에 달려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건강한 일벌들이 많은 벌통에는 꿀이 넘쳤다.

무성한 뒷말들을 남긴 채 우여곡절도 유난히 많았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출마자들의 명암도 하룻밤 사이에 갈렸다.

낙선한 이들은 4년 동안 와신상담할 테고 당선자들은 새로 문을 여는 국회에서 나름 바빠질 테다.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예외 없이 자신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부지런한 일벌임을 강조했다. 달콤한 꿀을 먹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알다시피 선거 결과는 여당이 국민의 회초리를 호되게 맞은 형국이다. 실망한 국민의 변화에의 욕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민은 달콤한 말보다 달콤한 꿀을 원한다. 그렇지만 집권여당은 달콤한 말놀이만으로 국민을 속여 왔다.

자칭 일벌들이라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말 놀음만 지속한 결과가 이번 선거였다.

집권여당의 선거 패배로 가장 어려움에 처한 건 청와대다.

청와대는 국민의 뜻을 수용하겠다는 간단한 논평으로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대한 소감을 대신했다. 하지만 ‘수용’이라는 말은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국민의 뜻을 반영하겠다는 의지로 읽히지만, 여전히 독선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 행태로도 보인다. 국민의 뜻을 수용하는 것이 마치 국민에게 아량이라도 베푸는 것 같은 뉘앙스를 지울 수 없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면서 주인인 국민의 뜻을 수용하겠다니, 이를 뒤집어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거부하거나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게 아닌가. 정부는 국민의 뜻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 따라서 수용이라는 말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게 민주주의다. 국민의 뜻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정부에게 있는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여왕벌과, 여왕벌을 호위하고 있는 수벌들과, 열심히 일만 하다가 짧은 생을 마치는 일벌들로 이루어진 꿀벌들의 세계를 상상해 본다. 대한민국에서 여왕벌은 누구이고 수벌은 누구이며 일벌은 누구인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 역할분담은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갖는다. 아무도 혼자서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감당하지 못한다. 실망은 때로 새로운 희망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국회와 정부에게 새봄의 벌통 하나씩을 선물하고 싶다. 그들의 세계를 한 번 눈여겨보라고 권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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