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6.04.2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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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십만 원이다. 뿌리치는 내 손에 꼭 쥐여주며 친정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자식 걱정에 밥은 제대로 먹었겠느냐며 사골 사다 푹 고아서 많이 먹고 기운 차리란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쑥버무리를 만들어간 나에게 다른 자식이 주었을 용돈을 아껴뒀다가 주셨다.

작은딸이 사위와 함께 만리타국으로 떠나고 나서 상심하고 있는 당신 딸이 안쓰러웠나 보다. 나는 그 돈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다.

팔십 고개를 훌쩍 넘어 이젠 자식이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애오라지 자식에 대한 걱정은 그대로 안고 계셨다.

사월 한 달은 쑥을 많이 뜯는다. 만개한 벚꽃 흩날리던 날도, 진한 라일락향이 번지던 날도 쑥을 뜯었다. 애쑥은 된장국을 끓여도 맛있고 쑥버무리를 해도 좋다.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친정엄마도 내 딸도 좋아한다. 나는 쑥이 지천인 사월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쑥버무리를 만들어 혼자 계신 친정엄마에게 갔었다.

헌데 지난 두 계절은 내 자식 걱정에 친정어머니는 안중에도 없었다. 딸과 사위가 한국에 있을 때는 투병하는 사위와 병간호하는 딸 걱정으로 가슴이 타들어갔고 시댁이 있는 아일랜드로 떠나고 나서도 그랬다.

타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아픈 사위는 좀 나아졌을까,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나뭇잎의 푸름이 짙어지면서 땅에 낮게 기대어 올라온 쑥을 봤다. 그때서야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

양쪽 무릎관절을 수술한 후부터는 쑥을 뜯지 못하니 누군가 가져다 드려야 드실 수 있다. 지천인 쑥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면서 자식원망은 하지 않았을까.

밥맛이 없을 땐 쑥버무리가 제일이라며 반기시던 친정어머니였다. 내 맘이 불편하다고 어머니께 불효를 저질렀다. 호강을 시켜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올봄엔 꽃구경도 못 시켜 드렸구나.

조급한 마음으로 쑥을 뜯어 쑥버무리를 만들어 친정으로 달려갔지만 늙으신 어머니는 수척한 딸의 몰골만 바라보시고 나는 죄송한 마음으로 방바닥만 내려다봤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따라갈 수는 있을까. 나는 내 딸이 안쓰러워 잠 못 이룰 때 친정어머니는 당신 딸 걱정으로 속이 탔을 것임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종종 자문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가장 밑바닥에서 굳은 심지처럼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뭘까, 내 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수십 년 전의 어린 나와 재회하면서 추억을 펼치다 보면 그 속에 부모님이 계셨고 지금은 마른 꽃잎처럼 바스락거려도 눈물겹게 나를 위로해 주고 다잡아 주는 홀로 계신 어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봄날이다. 어머니도 나도 봄날의 화사함과 푸른빛은 아득히 멀어졌다.

만개한 꽃을 보면 지는 일만 남은 게 안타까워 슬픔이 이는 나이다. 오직 자식에 대한 사랑만이 퇴색되지 않고 화사하고 짙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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