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을에 꽃이 핍니다
사람의 마을에 꽃이 핍니다
  • 김태종<삶터교회 목사>
  • 승인 2016.04.21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 論
▲ 김태종<삶터교회 목사>

누구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봄이 ‘왔다’고 하지 않고 ‘열렸다’, 또는 ‘피었다’고 하게 되었습니다. 봄이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열리거나 피어올랐다’고 하는 게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봄은 언제나 겨울 안에서부터 이미 열립니다.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고 할 시기인 새해 첫 달이 절반쯤 지날 무렵이면 버들강아지가 눈을 뜨기 시작하고, 그 무렵에 양지쪽 물웅덩이에는 산개구리가 알을 낳으며, 멀리서 산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가지 끝에 물이 오르는 것도 아슴하게나마 보이니, 벌써 그 무렵부터 봄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느낀 일이 한두 해가 아닙니다.

그렇게 봄이 열리기 시작하는 때에도 아직 사람들은 겨울이라고 생각하고, 겨울옷을 입고, 겨울이라고 말하며, 날이 좀 춥고 눈이라도 몹시 쌓이면 겨울이 언제 끝나느냐고 하며 몸을 웅크리곤 합니다. 이미 겨울이 슬슬 그 추운 그늘을 거두기 시작하고, 날마다 해가 길어지면서 봄을 피워올리는데 말입니다.

그 봄이 또 이렇게 열렸습니다. 양지쪽에서 꽃다지가 작고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이어 냉이가 봄소식을 알리는가 싶더니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 이야기며, 통통하게 차올랐던 목련 꽃잎이 열리는 봄의 노래, 새들의 싱싱한 날갯짓으로 그렇게 봄이 열리는데, 이제 생강나무 꽃과 산수유며 벚꽃과 진달래도 앞을 다투며 피어납니다. 누가 뭐래도 봄입니다.

이렇게 피어오르는 봄맞이를 하는 일로 내 몸이 먼저 분주해집니다. 나른한 몸을 깨우는 봄의 음식들이며, 겨우내 모자랐던 햇살을 모셔 맞이하면서 부족했던 것들을 채우기도 하고, 세상 가득한 봄기운을 모시는 일이 한가로울 수만은 없어 자꾸만 마음이 바빠집니다.

봄꽃들을 보면서 ‘사람의 마을에 꽃이 핀다’는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사람의 마을’이라는 말이 심상치 않게 들립니다. 언뜻 생각하면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그 마을이라는 뜻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요즘 되어가는 일들을 보면 그 말이 마냥 긍정적일 수가 없다는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끝없는 거짓말과 거기 놀아나면서 뒤엉키는 시궁창놀음, 그리고 거기서 짓밟히는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 생존권, 노동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들, 그리하여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억울하고 속임수와 야비한 짓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들이 활개치며 모든 사회분위기를 엮어가는 비논리와 비상식, 그리고 불법과 탈법과 비리를 내용으로 하여 돌아가는 세상, 바로 거기에 ‘꽃이 피고 있다’는 말로 ‘사람의 마을에 꽃이 또 피는구나’ 싶은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의’라는 말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갖가지 사회현상 안에서도 결코 거기 휩쓸릴 수 없다고, 그런 것들과 타협하거나, 그런 것들 앞에 무릎 꿇지 않겠다는 선한 의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의 마을에 꽃이 핀다’는 말은 아니겠는가 싶고, 그래서 이 꽃은 요즘 한창 피는 그런 꽃들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라는 말로 읽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역사의 봄, 사람 사는 길이 비로소 제대로 열리는 그런 봄을 꿈꾸는 계절이 바로 요즘이 아니겠는가, 그런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눈빛이 마냥 사랑스러운 계절이 아니겠는가 싶고, 그들이 있어 이 봄이 더욱 따스하고 부드러우며 포근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혼자 중얼거리며 온몸을 휘감아 도는 봄기운 앞에 다시 절을 올리며 이 봄을 그만큼 더 사랑하고 싶은 겁니다.날마다 좋은 날!!! - 풀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