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끓여 먹으며
라면 끓여 먹으며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4.20 2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점심을 종종 라면으로 때웁니다. 아내도 직장에 나가고, 자식들도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니 모임이나 강의가 없는 날이면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음식을 꺼내먹는 게 싫기도 하지만 라면을 좋아해서입니다. 횟집 술자리 때도 마지막엔 라면 사리를 넣은 매운탕을 먹어야 하니까요. 아무튼 마늘과 대파 송송 썰어 넣고, 계란 하나 풀어서 쉰 김치와 함께 먹는 라면 맛은 일품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인 1963년 9월에 처음 라면이 출시되었으니 라면이 나온 지도 어언 반백년이 지났습니다. 삼양식품이 일본의 ‘라멘’ 제조기술을 도입해 생산했으나 ‘라멘’이라 부르지 않고 ‘拉’의 중국식 발음인 ‘라’와 ‘麵’의 한국식 한자음인 ‘면’을 써서 ‘라면’이라 명명했지요.

‘자장면(炸醬麵)’과 같은 단어의 조어 구조이지요. 굶주림과 배고픔의 보릿고개를 극복할 대체식량으로 라면을 생산ㆍ공급했으나, 초기에는 국민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곡식 위주의 식생활을 해왔던 고유의 식습관 때문에 쉽사리 라면 맛에 동화되지 못한 탓이지요.

그러나 라면을 먹어본 사람들의 입소문과 저가로 급속히 국민식탁에 녹아들어 가난한 이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주식대용품으로, 술꾼들이 즐겨 먹는 숙취해소 음식으로, 상갓집 새참 등으로 널리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초창기 10원 했던 라면 값이 지금은 천원을 넘나드나 이보다 저렴하고 간편한 한 끼 음식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라면공화국입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연평균 라면 소비량이 74.1개로 일 년에 무려 36억 개의 라면을 먹어치우니까요. 외국 나들이할 때도 라면을 싸들고 가고, 알프스 융프라우에 올라서도 한 개에 만원씩이나 하는 국산컵라면을 사먹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입니다.

각설하고 라면 먹고도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 3관왕이었던 임춘애 선수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임 선수가 여자 육상 800m, 1500m, 3000m를 석권한 후 언론 인터뷰에서 ‘라면 먹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어요’라고 말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또한, 많은 젊은이가 고시촌에서 라면을 먹고 죽기 살기로 공부해 판·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지육림 속에 살아 나라가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모 재벌 딸 남편의 이혼소송 사유 중 하나가 ‘아들에게 라면을 먹이고 싶다’였습니다. 마음이 짠했습니다. 아니 충격이었습니다. 금수저들과 흑수저들의 삶의 간극이 이리 클지 몰랐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며 먹는 라면의 얼큰 매큼한 맛과 애틋한 부자지정을 모르고 사는 그들이 안타깝기 그지없으니 애당초 재벌 될 팔자는 아니었나 봅니다.

사실 라면은 서민들의 일용할 양식이긴 하지만 농산물이 아니라 공산품입니다. 라면공장에서 똑같은 라면이 하루에 수만 개씩 생산되니까요.

그런고로 흑수저들 뿐만 아니라 금수저들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게 보다 몸에 좋고 더욱 위생적인 라면을 생산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이 라면을 먹고 힘낼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누구든 성공신화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잘만하면 누구나 용이 되고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저 또한 가난했던 젊은 시절 라면을 지긋지긋하게 먹고 살았습니다. 돌아보니 라면은 눈물이었고, 오기였고, 도전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오늘도 면발이 쫄깃쫄깃 맛이 나니 아직도 청춘의 결기는 살아있나 봅니다. 몸은 엉망인데 입맛은 여전합니다.



/시인·문화비평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