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기다려 줘요
조금만 기다려 줘요
  • 배경은<사회복지사>
  • 승인 2016.04.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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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사회복지사>

약속한 시간에 집 앞으로 주차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와서 기다리는 내담자가 있다. 그는 나를 누나라고 부른다. 본인의 막내 누나와 동갑이기도 하지만 주민센터에서부터 알고 지낸 지 6년이 다 되어간다. 주민센터에 근무할 때 관내 수급자로 작은 일이라도 생기면 방문해서 시시콜콜 묻고 상의하던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 맺기에 미숙하다.

한 때, 조울증의 증세 때문에 사채를 써, 차를 구입하고 휴대폰을 3대나 개통해서 문란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몇 달 입원했었다. 퇴원 후, 꾸준히 약을 복용해서 조증의 증세는 호전되었으나 걱정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 나타났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해서 안 해 본 것은 절대 하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이 예전으로 돌아가(조울증) 함께 사는 노모를 힘들게 할까 하는 생각에 늘 불안해한다.

어릴 적, 따돌림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페인트 회사에 근무한 시절이 가장 행복하고 꿈도 있었다는 그는 지금은 팔순이 훌쩍 넘은 노모와 오래 살며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 것이 유일한 꿈이 되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자존감이 회복이 되고 동네 어르신과 꾸준히 운동을 하며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것은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그나마 있던 한두 명의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긴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의 상황에 잘 적응하며 자신의 질환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혹시라도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서 도움을 청한다.

노모와 함께 다니니 자연히 그의 주변에는 팔순이 넘은 어르신이 친구가 되었다. 또래와의 소통도 중요 할 거 같아 정신보건센터를 소개했으나 아직 다른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될 터라 지금부터 세상과의 교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공간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공예비엔날레를 관람하기도 하고 서점견학을 가기도 한다. 생각하는 일을 꺼리는 그에게 시집을 선물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시를 낭송하도록 했다. 건강에 예민하여 매체를 통한 건강관련 정보 수집 스트랩을 과제로 내 주면 매우 훌륭히 해내곤 한다.

요즘 들어 자주 피곤해 한다. 운동부족이라고 면박을 주고, 살이 많이 쪄서 아저씨 같다는 말로 놀리기도 하지만 언제나 인심 좋은 얼굴로 미소만 짓는 그가 정신장애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끔은 내가 그보다 더 조급한 마음에 엄마로부터 마음의 독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들이 노모의 건강을 늘 살피고 있지만, 언제까지 노모가 아들 곁에서 함께 있어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진지한 어투로, 이제는 버스도 혼자 탈 줄 알아야 하고, 물건 구매도 혼자서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염려를 하면 ‘누나, 조금만 기다려 줘요. 난 한 번에 되는 게 없어, 천천히 할게요. 누나도 알잖우, 내가 얼마나 꼼꼼한지’라며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왜 모르겠는가,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을. 늘 그랬듯이 그는 다시 살피고 점검하고 따져볼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세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는 도리어 내게 잔소리 중이다. 커피를 줄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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