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나비의 우화(羽化)
호랑나비의 우화(羽化)
  • 신금철<수필가>
  • 승인 2016.04.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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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온 산야에 파스텔 톤의 멋진 수채화가 펼쳐졌다. 예년과 달리 차례를 기다려 피던 꽃들이 금년엔 한꺼번에 피었고, 빈번한 미세먼지에 외출을 자제하여 짧은 봄꽃 잔치의 아쉬움을 남긴다.

꽃잎 위를 나풀거리는 나비의 출연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나비처럼 아름다운 빛깔과 예쁜 무늬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꽃 사이를 날며 꽃가루를 나르는 나비를 바라보다 손자를 떠올린다. 아홉 살인 손자는 과학자가 꿈이다. 특히 곤충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 도서를 즐겨 읽는다. 생태학습에 흥미가 있어서 기회가 있을 때면 제 엄마와 함께 현장학습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지난해 여름, 손자는 생태학습에 참여하여 2㎝가량의 호랑나비 애벌레 두 마리를 분양받았다. 애벌레를 키우는 방법을 책과 인터넷에서 조사하고, 향이 있는 잎을 먹여야 한다며 외가가 있는 먼 곳까지 가서 탱자잎을 따왔다. 먹이를 먹는 애벌레의 모습이 귀엽다며 열심히 먹이를 주고, 나들이를 가는 날엔 애벌레도 함께 갈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애벌레가 점점 자라 번데기가 되더니 드디어 번데기를 뚫고 젖은 날개를 비비며 나비가 되어 나오자 손자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번지며 기뻐했다. 아직 장난감이나 게임을 즐길 아이의 얼굴에서 곤충을 사랑하며 피어나는 미소를 보는 가족의 마음도 흐뭇했다.

손자는 자기 스스로 부화시킨 고운 나비를 곁에 두고 싶었겠지만 나비의 행복을 빌며 하늘을 향해 날려주었다. 한 마리는 정성껏 키워주어 고맙다는 날갯짓을 하고 힘껏 날아갔으나, 한 마리는 힘이 없이 날다 아래로 떨어져 푸득거렸다. 나비는 손자의 정성과 슬픔을 아는 듯 날아보려 애쓰는 듯했으나 서서히 날갯짓이 느려지더니 끝내는 미동이 없었다.

“나비야 주인을 잘못 만나 네가 날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늘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잘 살아”

손자는 나비를 손바닥에 올리고 엉엉 소리 내어 슬피 울었다. 우는 오빠를 따라 여섯 살 손녀도 나비가 불쌍하다며 함께 우는 바람에 식구들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손자를 달래며 화단에 심겨진 소나무 밑에 묻어주자고 했지만 나비가 너무 불쌍해서 못 묻는다고 떼를 써서 며느리가 하얀 유리병에 넣어 사흘을 냉장고에 보관하였다.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고 나비를 보는 손자의 모습이 너무도 슬퍼 보였다. 나비는 식구들의 설득 끝에 손자가 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나비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말 못하는 곤충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손자에게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며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소중하다. 작은 나비도 이렇듯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하물며 열 달을 자기 몸속에 품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귀한 자신의 자식을 어찌 학대하고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을까?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을 우화(羽化)라 한다. 나비는 우화 할 때 가장 위험해서 우화 도중 잘못하여 땅에 떨어지면 날개가 펴지지 않고 굳어버려 살아나지 못한다. 일부 인면수심의 어른들이 자녀들의 가냘픈 날개를 찢어서 세상을 날아보지도 못하고 추락하는 불행한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

요즘 손자는 상추 잎에 붙어온 달팽이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고 있다. 곤충을 사랑하는 손자가 인류의 생명 존중에 앞장서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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