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우수(憂愁)
봄의 우수(憂愁)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4.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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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을 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봄은 사람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슬프게, 유쾌하기보다는 침울하게 하는 경향이 분명 있다.

봄날 사람의 슬픔과 침울 모드는 풀과 꽃 같은 자연 경물의 화사함과 생기발랄함에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춥고 삭막한 겨울에는 모르고 지냈던 마음속 시름들이 봄풀 돋아나 듯, 봄꽃 피어나 듯 살아나는 것이리라.

당(唐)의 시인 가지(賈至)도 이러한 봄의 우수(憂愁)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봄의 우수(春思)

草色靑靑柳色黃(초색청청유색황) : 풀빛은 파릇파릇 버들빛은 노릇노릇

桃花歷亂李花香(도화역란이화향) : 복사꽃 만발하고 오얏꽃 향기로워라

東風不爲吹愁去(동풍불위취수거) : 봄바람 불어도 시름은 불어낼 줄 모르고

春日偏能惹恨長(춘일편능야한장) : 도리어 마음속 한을 길게도 불러내누나




풀은 파릇파릇 돋아나고 버드나무 가지는 노랗게 물들어간다. 봄의 대지가 기나긴 동면에서 깨어나 무표정 무감각의 얼굴에 파랗고 노란 빛깔로 채색을 한다.

이 색깔들은 단순한 색깔이 아니라 생기가 물씬 배어 있는 마법의 색깔이다. 파릇파릇 노릇노릇 풀과 버드나무가 먼저 분위기를 잡자, 그 뒤를 이어 복숭아 꽃 오얏 꽃이 마치 자신들이 봄 무대의 주인공인 양 으스대며 도도한 자태를 드러냈다. 한번 불이 붙자, 복숭아꽃은 여기저기 어지럽게 만발했고, 새하얀 오얏꽃은 고혹적인 향기를 마음껏 발산하였다.

이처럼 봄의 무대는 온갖 풀과 버드나무, 복숭아꽃, 오얏꽃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런데 환희(歡喜)를 연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봄의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찾아든 것은 도리어 그 반대인 우수(憂愁)였다.

한번 마음에 찾아든 우수(憂愁)는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요지부동(搖之不動)에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동장군과 그 일당을 가뿐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날려버린 불세출의 영웅 봄바람도 이것을 날려 보내지는 못하였다. 봄바람으로도 안 되자 이번에는 봄 해(春日)가 나서 보았지만, 이도 별무소용(別無所用)이었다.

봄이라서 해 스스로 길어진 것처럼, 도리어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한(恨)을 길게 만들 뿐이었으니, 봄의 우수(憂愁)는 좀처럼 가실 줄을 몰랐다.

봄은 분명 환희(歡喜)의 무대이다. 그러나 그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의 반응은 도리어 우수(憂愁)이다. 파릇파릇한 풀과 노릇노릇한 버드나무 그리고 복숭아꽃과 오얏꽃은 봄을 수놓지만, 막상 사람의 마음에는 우수(憂愁)가 샘솟고, 한(恨)이 길게 자랄 뿐이니,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오묘하기 그지없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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