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을 각골난망하라
잔인한 4월을 각골난망하라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4.17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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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취재3팀장(부장)

4월이면 어김없이 불리는 문구가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이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행에 나오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은 강렬한 표현으로 말미암아 4월을 대표하는 문구가 되었다.

세계 1차대전 이후 황폐화된 유럽의 공황상태와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느라 꽃이 만발하는 자연의 극명한 대비는 시를 통해 4월을 더 잔인하게 느끼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지난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건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겐 영원히 잔인한 달로 기억될 4월이 되었다. 수학여행에 나선 수많은 학생이 주검으로 돌아온 그날은 우리에 게‘가장 잔인한 4월’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참사 2주기인 지난 16일 전국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렸다. 청주에서도 시민단체 주관으로 추모제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세월호 유가족 대표인 고 박수현 학생의 어머니가 참석해 담담하게 현재 상황을 들려주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대신 죽겠다고 했던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는 수현 어머니는 “국민 여러분이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그날도 벌써 2년이 지났다. 하지만, 관피아니 해피아니 논란을 키우며 당장 칼날을 들이댈 것 같았던 비리척결도, 안전 불감증도, 책임자 처벌도,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만 보냈다. 한쪽에선 덮자 하고, 한쪽에서 밝히자는 이중적 모순 속에 혼란이 가중되기만 했던 게 사실이다.

흐지부지되던 사정의 칼날은 정당 간 당리당략으로 흘렀고, 소수자의 아픔으로만 치부하는 사회분위기로 몰아갔다. 여기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국정교과서 문제 등 민감한 국정 현안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방식은 출구 없는 논쟁만 일으키며 국민에게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이처럼 진실에서 멀어지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 심판은 총선을 통해 드러냈다. 이념도 아니고 권력도 아닌 곳으로 민심은 크게 방향을 틀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구도가 무너지고, 집권 여당과 야당의 의석수가 뒤바뀌는 가운데 제3당을 탄생시키는 절묘한 수를 선택한 것이다.

무너진 힘의 정치 균형에 어느 당도 샴페인을 터트릴 수 없는 구도이고 보면 413 총선을 치른 올해는 정치권도 4월은 잔인한 달로 기억될 것이란 생각이다.

정계개편의 시발점이 된 세월호라는 점에서 총선 직후에 치러진 세월호 추모행사는 관심거리였다. 총선 민심 때문인지 원유철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주기 기억식’에 참석했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당차원에서 행사 참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개인자격으로 광화문 분향소에 참석하는 행보를 보였다.

또 경찰과 대치국면 속에 진행됐던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추모행사와는 달리 올해는 경찰의 협조 속에 진행됐다는 소식이다. 이를 보면 국민을 움직이는 힘은 진정성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정치권이 이제서야 느끼고 있는 것일까.

차제에 우리 국민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엄정한 정치를 요구해야 한다. 그럴 권리를 국민은 맘껏, 그리고 힘껏 누려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이 국민의 수준에 다다른다. 총선에서 절묘한 수를 둔 국민의 수준에 이른다. 잔인한 4월을 각골난망(刻骨難忘)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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