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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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운우<청주시 서원구 농축산경제과장>
  • 승인 2016.04.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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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이운우<청주시 서원구 농축산경제과장>

빛바랜 사진 속에서 세월을 찾고 추억을 찾고 친구들을 찾아본다.

아침 일찍 뿌옇게 안개인지 구름인지 어둑어둑한 날씨 속에 가랑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한 사이로 논두렁길을 4㎞ 정도를 단숨에 내달려 약속된 집결지까지 왔지만, 네댓 명만이 모였을 뿐, 한참을 기다리다 허탈하게 되돌아왔다.

새로 산 운동화와 바지는 흙으로 얼룩져 엉망이 되었다. 밤새 새로 산 운동화를 머리맡에 두고 꿈속인지 잠결인지 기차 타고 소풍 가는 꿈을 꾸다 새벽같이 일어나 서둘러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뛰어갔는데 비로 소풍이 취소되었단다.

소풍을 못 가는 것보다 새로 산 운동화가 흙으로 얼룩진 것에 더 가슴 아파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아련한 추억이다.

며칠 후 다시 모여 증평에서 기차를 타고 청주로 출발했는데, 화물기차였던가 보다. 창문도 없이 캄캄하고 천장 밑 작은 틈 사이 햇살이 꽂히는 곳으로 뾰안 먼지가 폴폴 나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더럽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그런 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다면 난리 정도가 아니라 해외토픽감이리라.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어둠 속에서 장난치며, 기차 타고 여행한다는 즐거움이 대단했었다.

매번 앞 개울 모래밭에서 수건돌리기 게임만 하다 오는 소풍에서 이번엔 기차 타고 도시로 간다 하니 무척이나 설레었으리라. 친구들 중에는 기차를 처음 타보는 애들도 있었으니 얼마나 신기 했을까? 증평 쪽 멀리 기차가 지나가면 뒷동산으로 뛰어 올라가 기차 구경을 하곤 했을 시기이니 얼마나 설레 였을까? 나는 그래도 큰집이 청주인지라 가끔 기차도 타보고, 확실하진 않지만 저녁 10시인지 12시가 되면 강제 소등되는 전깃불이지만 등잔불보다 몇십 배 밝은 빛에 눈을 움츠려야 만 하는 전깃불도 구경해보곤 하는 호사를 누렸다.

기차에서 내려 중앙공원에 가서 큰 은행나무 둘레로 사진사들이 있고 그 사이에서 사진을 찍은 모습이다. 나중에서야 그 은행나무 이름이 압각 수라는 것과 나이가 900년으로 충청북도기념물 제5호라는 것과 압각수라는 명칭은 잎의 모양이 오리의 발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걸 알았다. 중국에서는 은행나무가 압각수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단다.

그리고 연초제조창으로 이동하여 담배 만드는 공장을 견학하였는데 자르지 않은 기다란 담배가 연속으로 지나는 모습이 신기 했었다. 어머니께서는 선생님께 드리라고 아리랑이라는 담배를 1갑 사 주셨는데 주머니 속에서만 주물럭거리다 쑥스러워서 끝내 드리지 못하고 도로 가져왔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집에 돌아올 때도 그 화물기차를 탔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타보고 싶어도 타볼 수 없는 먼 옛날 유년시설의 소중한 추억이다.

그 시절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하는 압각수는 세월의 흐름을 잊은 채 다가올 여름의 풍성한 외모를 준비하고 있고 나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퇴직을 할 때가 다가오나 보다.

이번 주말에는 압각수 밑에 사직 찍었던 자리를 찾아 초록색 잎이 돋아나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앞으로 다가오는 제2의 삶을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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