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는 얄궂다
봄비는 얄궂다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04.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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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최명임<수필가)

얼음 땅을 난타하던 빗방울 연주는 생生을 위한 서곡이었나. 울림도 아름지더니 오늘에사 봄볕 흐드러지다. 색깔도 다른 사랑놀음이 사방에 지천이다.

도화 만발한 봄 때깔은 흥건히 마음을 달구어 페로몬을 뿜어댄다. 그 냄새 낭자하다. 벌의 유혹인가, 꽃은 페로몬에 취해 얼굴 붉히고 나비도 덩달아 몸이 달아오른다. 종다리는 이미 가뭇한 알이라도 낳았으려나.

얄궂은 내 마음은 어인 까닭일까. 이순耳順을 곡해한 가슴의 도발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 봄비는 시샘인가, 사랑인가. 꽃대를 잡고 흔들다가 앵토라진 얼굴로 눈 흘긴다. 또 어느 때는 꽃잎에게 얼굴 붉히면서 야릇한 눈빛으로 구애를 한다. 어설픈 객기는 삼각관계 일지언정 그중에서도 독보적이고 싶다. 겨드랑이에 거웃 나고 몽정을 치른 사내 녀석처럼 얄궂다. 봄비는 사랑인가?

갓 돋은 잎새에도 장난을 친다. 짓궂은 녀석의 간지럼에 도리질을 하다가 깔깔대고 웃는다. 그럴 때 봄비는 아주 귀여운 사내 녀석, 어린이집 참새 반 지한이 같다. 지한이는 네 살, 귀엽기 짝이 없다. 예쁜 여자 친구에게 다가가 기습 뽀뽀를 한다. 배실 배실 웃어주는 예쁜이도 있지만 울먹울먹 쪼르르 달려와 이르는 귀염이도 있다. 옴포동이 지한이 웃음보가 터지면 아이들도 데굴데굴 덩달아 굿중놀이에 빠진다. 맑고 고운 소리가 변죽을 울린다.

봄비를 그려보라면 시커먼 크레파스로 옆구리가 울퉁불퉁 한 동그라미를 수없이 그려놓는다. 노랑이나 초록, 빨강으로도 그려놓는데 그 중에는 제법 그럴싸한 동그라미도 있다. 봄비의 속성을 아는 걸까. 봄비는 행복이다.

봄비가 오는 날은 아이들이 창가에 모여든다.

“얘들아, 봄비가 와요-. 이제 잠이 깬 새싹들이 세상으로 나올 거예요. 우리 함께 기다려 봐요. 왜요? 왜 나와요? ㅎㅎㅎ-.”

“봄이 왔기 때문이지요. 겨울엔 너무 추워 꼭꼭 숨었다가 따스한 봄볕에 놀러 나올 거예요. 왜 놀러 나와요?”

봄비가 꽃인 줄, 열매인 줄, 봄비가 사람인 줄, 우주인 줄 아는 나이가 되면 그 마음에 희망 같은 절망, 절망 같은 희망의 그림자가 하나씩 드리워지리.

마음 둘 곳 없어 지독하게 외로운 날은 얄밉도록 더 부추긴다. 본연의 사유가 숨어 있는 그곳까지 스며들어 쿡쿡 쑤셔댄다. 으슬으슬 몸살이 덤빈다. 살아도 말아도 좋은 재미없는 세상, 이따금 봄비는 절망이다.

봄비 끝에 한 뼘 더 자란 목련꽃, 한결 붉어진 자색 빛깔에 마음이 부푼다. 지금 막 봄의 산도를 열고 나온 희망처럼.

굳은살 박힌 나목의 물길을 타고 올라 꽃잎과 색깔만 키운 것이 아니다. 망부석이 되어 버린 자색 꽃잎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 한다. 봄비는 희망이다.

봄비 속을 거닐면 그때 나를 마음으로 품어준 그 머슴애가 공연히 생각이 난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우연하게 한번 만나고 싶었다. 얼굴엔 살색 분가루로 주름을 덮고, 머리엔 검정 물감으로 세월을 덮어, 비 오는 날 찻집에서 마주하고 싶다. 그때 입었던 핑크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서도 좋겠다. 유리창에 아른거리는 둘의 세월일랑 그냥 묻어두고 그때 마음만 열어서 한 번쯤 활짝 웃어보아도 좋으리. 기다림을 가져볼까? 추억을 불러오는 봄비가 바람이다.

때로는 지한이 같이 아주 어려지고 싶은 초록색 크레파스다. 핑크색 사랑이고, 회색 절망, 노란색 행복, 무채색 바람 그리고 청람색 희망이다.

봄비는 참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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