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노래
4월의 노래
  • 안상숲<진천숲해설가>
  • 승인 2016.04.1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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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숲<진천숲해설가>

4월의 숲은 생기발랄해요. 겨울방학을 마친 아이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오는 교문처럼 반가운 인사와 안부로 소란스럽지요. 웃음이 터진 꽃망울들과 주먹손을 편 참나무의 연두 손바닥.

봄바람은 연신 그들을 흔들고, 흔들려 춤추는 그대로 반짝여요. 봄을 잊은 아이는 없는지 바람은 숲의 틈을 꼼꼼하게 살피며 흔들어 깨우지요.

그리움이란 말은 지나간 것들에 쓰이는 말이지만 봄의 숲은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을 만큼 그리워요. 보고 또 보고, 끝없이 퍼 올리는 식물들의 초록과 분홍과 노랑들을 보느라 <봄>, 너무 아름다운 건 차라리 슬픔인가요. 봄의 숲은 역설적이게도 웃다가 눈물지게 해요. 아마 추웠던 겨울을 이겨낸 대견함 때문이겠지요.

얼마 전 제가 사는 가까운 숲에서 부모에게 죽임을 당해 묻힌 네살바기 아이를 찾느라 야단이었던 적이 있었어요. 이제 막 진달래, 참꽃이 붉게 피어나던 그 무렵이었어요. 땅을 헤집는 굴삭기와 사방에서 현장중계를 하는 기자들의 뒤늦은 소란스러움 곁에서 묵언으로 피어나던 진달래.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그 날 쓰러져 간 젊음 같은 꽃 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戀戀)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 이영도, 진달래

진달래를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도 저리고 시렸을 테지요. 유독 어렸던 죽음이 많았던 우리의 지난 4월들. 저항하다가 혹은 가만히 있다가 떠난 4월의 아이들. 그러니 4월 우리의 산하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를 바라보는 마음이 처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4월의 숲은 탄생의 숲이지 죽음의 숲이 아니에요. 게다가 어린 죽음은 모순이지요. 봄바람이 아무리 깨워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어린 목숨들이 더는 있게 해서는 안 될,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들이 해마다 4월마다 진혼곡을 불러야 하는 그런 4월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4월의 숲은 가만히 있지 않아요. 가만히 있지 않음으로 4월의 숲은 깨어나고 피어나고 사랑하지요. 개학날 아침처럼 4월의 숲은 떠들썩 시끌 들떠 있어요. 사랑을 구하느라 한껏 치장을 한 수컷 새들과 집을 짓느라 검불을 쓴 암컷 새, 맨몸으로 겨울을 건너온 네발나비와 바위 아래에는 어느새 개미지옥.

산속 습지에는 개구리와 도롱뇽과 물달팽이의 알이 생명을 시작하고 등위에 날개싹이 돋아나는 어린 잠자리의 탈피. 낮은 곳 높은 곳, 구석지고 후미진 곳 어디라도 골고루 햇살 찾아가 머물러주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4월의 숲.

초록을 길어 올리는 숲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듭니다. 하늘을 채우는 새들과 땅을 채우는 꽃, 꽃들을 이어줄 곤충들과 곤충을 먹여 살릴 꽃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새들까지…. 모두 숲의 틈을 찾아내 채우고 숲을 완성해요.

하늘이 비어 있어 고마워요. 하늘이 가득 찼으면 무슨 수로 땅의 것들이 키를 키우며 살 수 있었을까요. 땅이 가득 찼으니 고마워요. 땅이 훤하게 비어 있으면 우리 어디에 두 발 딛고 살 수 있었겠어요.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 고맙고 고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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