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육지탄 (髀肉之嘆 )의 선거
비육지탄 (髀肉之嘆 )의 선거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4.1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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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동양에서 가장 많이 읽힌 소설은 단연 <삼국지>일 것이다.

위, 촉, 오 세 나라가 서로 대치하면서 격랑의 역사를 <연의 演義>, 즉 사실에 부연해 재미를 더한 <삼국지>는 유비를 비롯해 조조와 손권, 제갈공명, 관우, 장비 등 걸출한 인물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수많은 곁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토리텔링 원형의 보고이다.

비육지탄肉之嘆)은 <삼국지> <촉서> <선주전 先主傳>에 나온다. 허벅지 살에 대한 탄식, 별로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하면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속뜻이 있는 말이다.

조조에게 패한 유비는 형주 땅 신야에 머물면서 먼 친척 유포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연회에 참석했던 어느 날, 뒷간에서 몰라보게 살이 오른 허벅지를 보고 탄식했다는 유비의 일화에서 비롯된 비육지탄肉之嘆)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말을 타고 전쟁터를 누빌 때는 근육이 팽팽하더니, 편안한 대접을 받으며 세월을 죽이는 동안 싸움의 근육을 잃어버린 탄식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인 오늘, 유권자와 후보자 모두에게 절묘하게 어울린다.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1등이 아니면 전멸일 수밖에 없는 현행 선거제도 탓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의 극단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그러니 짐짓 점잖은 체 지적하는 언론의 정책선거 실종 운운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 헐뜯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 정도가 더욱 심해지면서 속절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주요 정당이 내건 구호는 또 어떤가. 19대 국회가 여소야대였던가를 착각하게 하는 집권여당의 야당 심판론은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

그러니 급기야 싹쓸이를 막아 달라는 읍소의 야당 대응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야당 역시 마찬가지여서, 선명성이나 거대 여당의 독주에 대한 견제 혹은 대안의 제시는 외면하고 경제에만 몰입함으로써 착한 백성이 자본의 탐욕에 현혹될 수 있는 우려는 별로 염두에 없다.

원내 3당을 목표로 하는 신생정당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긴 마찬가지.

호남 패권주의에 목을 매는 현실은 그들이 선량(選良)이 되길 원하는 것인지 야당의 옷만 걸쳐 입은 또 다른 기득권의 제 몫 유지하기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유권자 입장에서 비육지탄肉之嘆)은 사뭇 그 의미가 크다.

이번 총선에 입후보한 후보자들의 평균재산은 새누리당이 41억원, 국민의당 23억원, 더불어민주당 12억원으로 집계된 바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순자산 보유액 통계에서 10억원 이상은 4.2%에 불과하니, 선거철 아니면 언감생심 가난한 백성이 언제 그런 큰 부자들에게 절을 받아 볼 것인가. 선거 아니면 언제 우리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잘난 사람들의 어설픈 웃음과 몸짓을 볼 수 있단 말인가.

통쾌한가.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무릎쯤은 간단하게 꿇는 가진 자들의 사탕발림에 만족하는가.

아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건 그나마 민주주의 때문이고, 주권재민이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영원히 주인임을 각인시키는 일은 오직 투표. 만나는 사람마다 오늘 인사는 온통 “투표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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