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을 따면서
복사꽃을 따면서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6.04.1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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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총선을 며칠 앞둔 읍내 아침 풍경이 재미있다. 하나로마트 앞 사거리를 지나는데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호각소리에 맞춰 일제히 절을 한다.

다음 사거리에서는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리목에서는 연두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 차에 대고 공손하고도 낮은 자세로 절을 한다.

덜덜거리는 내 고물 트럭이 언제 이렇게 극진한 예우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선거철이 되고서 갑자기 받는 대접이 민망하다.

군청 사거리를 지나자 차는 이내 내 과수원이 있는 동네로 접어든다.

이른 아침이지만 동네는 과수원마다 복숭아 꽃눈 따는 손길로 분주해 보인다. 나도 부지런히 채비하고 밭으로 든다. 며칠 전 내린 비에 터질 듯 말 듯 부풀어 오른 분홍빛 복사꽃 봉오리가 함초롬하다. 좋은 복숭아를 생산하려면 아무리 고운 꽃이라도 많이 솎아내야 한다.

꼭대기 가지는 까치발을 들어도 손이 닿지 않는다. 무리하게 잡아당기다 큰 가지가 통째로 부러지고 말았다.

아직 3년생이라 엄청나게 큰 가지는 아니지만, 한 번의 실수로 올해 수확의 손해는 물론 나무의 수형까지 흐트러져버린 걸 생각하니 후회막급이다.

결과지를 세어본다. 대략 스무 개 정도다. 앞으로 큰 뿌리 하나에 잔뿌리 스무 개 정도가 서서히 죽어 갈 것이다.

나무는 지상부가 상하면 비율을 맞추기 위해 그만큼의 뿌리도 스스로 죽여 버린다.

반대로 뿌리가 상해도 그만큼의 잎을 떨어트려 지상부를 건강하게 키워 낸다. 지상부와 지하부의 비율을 스스로 맞추는 나무. 사람 사는 세상도 이런 모습이라야 자연스러울 터인데 그것이 참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도시가 꽃이라면 농촌은 뿌리라는 말을 흔히 한다. 우리 사회가 한 그루의 큰 나무라면 지상부가 활짝 꽃 피울 수 있도록 굳건하게 땅에 뿌리내리는 것이 농촌이다.

그런데 이 뿌리가 심상치 않다. 봄이면 수입농산물을 피해 이것저것 심어보지만, 수확 후 판매를 해 보면 생산비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농민이 가져야 할 몫의 수입이 어딘가로 흘러갔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 서민들도 어렵기는 농민 못지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건 아마도 최상위 부유층으로 가지 않았을까. 뿌리가 허약해졌는데 꽃만 엄청나게 크고 화려해서야 그 꽃을 두고 진정한 의미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라는 큰 나무의 뿌리가 건강하자면 이번 선거에서 농민 출신이 다수 당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 중에 농민 대표는 드물다. 민중연합당에서 농민 대표로 이대종 후보가 나왔지만, 당선 가능성은 미미한 모양이다.

더민주당에서 비례대표 당선권 안에 축산인 김현권씨가 포함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국회의원 수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당을 막론해 농업 관련 공약이 부실한 것은 더 문제다. 예산 편성이나 농업과 관련한 각종 입법에서 타 산업보다 불이익을 받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농업을 적자산업이라고 규정해버린 것 같아 위기감을 느낀다.

복사꽃을 따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가지가 부러지면 그만큼의 뿌리를 스스로 죽이고, 뿌리가 죽으면 스스로 잎을 떨어트려 건강한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 총선을 사흘 앞둔 오늘, 뿌리는 생각하지 않고 꽃만 이야기하는 정치권이 안타까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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